지난달 27일 팔레스타인의 라말라에 있는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무덤이 발굴됐다. 2004년 매장된 관이 8년 만에 다시 땅 위로 올라온 것은 끊임없이 제기된 독살 의혹을 풀기 위해서다. 아라파트처럼 죽어서까지 논란이 돼온 지도자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죽은 자를 다시 꺼낸다 해서 역사가 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의심할 만한 상당한 정황 증거 없이 정치적 목적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들은 사후에도 편히 쉬지 못할 운명인 듯하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무덤이 파헤쳐진 각국 지도자들을 최근 소개했다.
시몬 볼리바르
2010년 남미의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관이 사망한 지 180년 만에 다시 열렸다. 볼리바르의 후계자를 자처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발굴을 주도했다. 볼리바르의 사인은 폐결핵으로 알려져 있지만 차베스는 볼리바르가 1820년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의 해방과 통합국가를 추진하자 기득권 세력이 그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조사에 참여한 의사들은 "시신에서 독성 물질이 발견됐지만 볼리바르가 복용한 약의 성분일 수 있다"며 "의도적으로 주입된 독에 의해 사망했다는 가설을 입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차베스는 "증거가 없지만 그는 살해됐다"며 입장을 고수했다.
재커리 테일러
미국에는 재임 중 사망한 대통령이 8명 있다. 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도 그 중 하나다. 1850년 숨진 그의 사인은 다소 별나다. 워싱턴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찬 우유와 체리를 한꺼번에 마신 후 며칠 동안 복통에 시달리다 숨졌다. 주치의는 소장의 박테리아 감염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테일러에 대한 책을 준비하던 클레라 라이싱 플로리다대 교수는 테일러가 살해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남부 출신임에도 노예제에 반대 입장을 취한 그를 남부의 정적들이 독살했다는 것이다. 1991년 후손들의 동의를 얻어 시신을 발굴했다. 하지만 의혹은 입증되지 않았다. 조사단은 "위장염 때문에 생긴 복합적 질병이 사인이며 살인의 증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라이싱 교수는 "살해든 아니든 테일러의 정적들은 그의 죽음으로 이득을 봤다"고 말했다.
살바도르 아옌데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은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쿠데타 세력이 대통령궁을 포위하자 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족들은 쿠데타 세력이 그를 사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1년 피노체트 독재 시절 인권침해를 조사하던 사법부는 아옌데의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 시신을 꺼내기로 결정했다. 아옌데의 유해를 분석한 해외 탄도학 전문가들은 "자동소총에서 발사된 두 개의 총알이 턱 아래에서 두개골을 관통했다"며 "외부 개입의 흔적은 없다"고 결론내렸다. 아옌데의 가족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굴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 것 같다"고 결과를 수용했다.
차우셰스쿠 부부
25년간 루마니아를 통치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부인 엘레나의 묘를 파헤친 이유는 앞의 사례들과는 다르다. 1989년 12월 25일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차우셰스쿠는 부인과 함께 전용헬기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다 군부에 붙잡혔다. 군부는 반역죄 등을 적용해 차우셰스쿠 부부를 즉각 총살하고 부쿠레슈티의 군인묘지에 묻었다. 차우셰스쿠의 자녀들은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 시신이 제대로 매장되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에 군인묘지의 시신이 부모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5년의 소송 끝에 2010년 시신의 신원 확인을 위해 관을 꺼냈다. 유전자 조사 결과 남성의 시신은 차우셰스쿠로 밝혀졌다. 하지만 엘레나는 증거 부족으로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블라디슬라브 시코르스키
2차 대전 당시 영국 런던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의 총리였던 블리디슬라브 시코르스키는 1943년 지브롤터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졌다. 영국 공군은 정비 결함이 추락 원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폴란드 국민은 소련과 영국의 첩보당국이 공모해 시코르스키를 살해한 후 시신을 비행기에 태워 암살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소련의 폴란드인 탄압에 분노한 시코르스키가 소련과 서방의 연합작전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자 그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2008년 폴란드 당국은 의혹을 밝히기 위해 유해를 발굴했다. 시코르스키의 사인은 충돌로 인한 다중 장기손상으로 밝혀졌다. 독살의 증거는 물론 목을 조른 흔적이나 총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시프 나와즈
아시프 나와즈 파키스탄 총사령관은 1993년 1월 조깅하던 중 돌연 숨졌다. 당시 군부는 나와즈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부인 등 유족은 사망의 배후에 나와즈 샤리프 총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적을 탄압하라는 샤리프 총리의 요청을 거절했기 ㏏??제거됐다는 것이다. 나와즈의 부인은 그 해 8월 미국의 사설기관에 보낸 나와즈의 머리카락에서 정상치를 훨씬 넘는 비소 성분이 검출됐다며 사인 재조사를 요구했다. 의회해산으로 샤리프 총리가 물러나고 베나지르 부토 정권이 등장하자 사망 10개월 만에 나와즈의 시신이 무덤에서 나왔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의사들이 참여한 조사단은 나와즈의 시신을 부검한 뒤 사인은 비소 중독이 아닌 심장마비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유족들은 2008년 의혹을 다룬 책을 출간하는 등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트루구트 외잘
트루그트 외잘 터키 대통령은 1993년 재임 중 사망했다. 의료진은 1980년대 심장수술을 받은 외잘이 심장질환 악화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유족은 독약을 탄 음료수를 마시고 숨졌다고 주장했다. 쿠르드족 출신인 외잘이 쿠르드족 반군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온건정책을 추진하자 반대파가 그를 암살했다는 것이다. 올 6월 사인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감사원 보고서에 따라 10월 2일 외잘의 관이 열렸다. 터키 일간 투데이스자만은 지난달"외질의 시신에서 4가지 독성물질이 발견됐다"며 "자연상태보다 10배가 넘는 성분도 있다"고 보도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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