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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면 삽들고 나선다" 비탈길도 안전한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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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면 삽들고 나선다" 비탈길도 안전한 동네

입력
2012.12.0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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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3cm 이상 쌓였습니다. 봉사단원들은 각자 맡은 구역으로 즉시 모여주세요."

서울의 12월 초순 적설량으로 32년만의 기록적인 폭설(7.8㎝)이 내린 5일 낮 12시30분. 광진구 중곡 4동에 사는 주부 김용숙(51)씨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고 곧장 집을 나섰다. 집합 장소인 용암사로 서둘러 갔지만 이미 20명 넘는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곧이어 대규모 '눈 삽질'이 시작됐다. 용암사 안에 보관중이던 눈 삽과 서까래를 받아 든 이들은 동네 골목과 비탈길 등 구석구석 쌓인 눈들을 빠르게 치워나갔다. 2시간 만에 삽을 든 주민 수는 80명 가까이로 늘었다. 청바지, 트레이닝 복, 점퍼 등 집에서 입던 편안한 복장 그대로 나타난 이들은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지만 눈이 쌓이기가 무섭게 능숙한 삽질로 거둬냈다.

이들은 광진구 중곡4동 제설 봉사단원들이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는 김씨는 "눈 쌓이는 걸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며 웃었다.

봉사단원들이 동네 눈 치우기에 나선 것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차산과 용마산 사이에 자리 잡은 동네이다 보니 광진구에서 비탈길이 가장 많다. 어느 한 집이라도 자기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으면 미끄러져 다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어떡해서든 눈을 치워야 했고 뜻이 맞는 주민 몇 명이 삽을 들고 나선 게 시작이 됐다.

물론 처음부터 참가자들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쌓이는 눈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나마 눈을 치우겠다는 주민들도 통장협의회, 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단체 3곳으로 나뉘어져 제각각 제설 작업을 하다 보니 구역도 겹치고 치우는 곳만 치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7월 동장에 부임한 고재풍(54)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각 단체 별로 눈 치울 담당 구역을 정해줬다"며 "제설 작업을 시작하는 기준도 적설량 3cm로 정해 일률적으로 눈 치우기를 진행할 수 있도록 통일했다"고 말했다.

고씨의 생각은 적중했다. 지난 겨울 폭설에서도 봉사단원들은 우왕좌왕 하지 않고 온 동네가 눈 쌓인 곳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깨끗해졌다. 고씨는 "눈이 내리면 물어볼 필요도 없이 언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며 "눈 치울 맛이 나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참가자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초 40명 정도였던 봉사단원은 올해 140명 가까이 늘었다. 광진구 관계자는 "구의2동 등 주변 동네에서도 중곡4동의 아이디어를 따 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체계가 잡히면서 봉사단이 동네 해결사로 나서는 일도 많아졌다. 지난해부터 올 여름까지 용마산, 아차산에 산불이 4차례 났는데, 그 때마다 봉사단원들이 등에 물을 지고 산에 올라 소방헬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불을 잡았다. 장마철엔 산 바로 아래 물이 차면 어김없이 나타나 직접 물을 퍼내고, 여름에는 방충망, 겨울에는 문풍지를 붙인다. 주부 이명화(56)씨는 "우리 동네 사정은 우리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기댈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제설봉사단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말했다.

이날 눈 치우기는 오후 9시가 넘어 대원외고 앞 비탈길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서울의 아파트나 골목 길 대부분이 폭설과 한파로 눈이 쌓인 채 얼어붙었지만 중곡 4동만은 언제 눈이 왔느냐는 듯 말끔했다. 간호보조원 채광옥(49)씨는 "비지땀을 흘리며 눈 치우고 있을 때 못 본 척 지나치는 동네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얄밉다"면서도 "미안해서라도 언젠가는 함께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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