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의 작은 도시 삼척이 지금 홍역을 앓고 있다. 이곳에 들어설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놓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전쟁을 치르면서, 해당기업들은 물론 지역사회도 갈등과 반목이 확산되고 있다.
삼척은 주된 산업이었던 탄광업이 쇠퇴하고 폐광이 늘어나면서, 에너지도시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 그 중에서도 원료조달이 쉬운 해안도시의 이점을 살려, 석탄화력발전소 쪽에 무게를 뒀다. 정부 역시 '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13~2027년)'에서 석탄화력발전소 확충의향을 갖고 있어, 삼척은 이 계획이 확정되면 국내 최대의 화력발전도시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삼척 화력발전소 수주전에는 동양(동양파워) 동부(동부발전삼척) 포스코(포스코에너지) 삼성(삼성물산) STX(STX에너지)가 뛰어들었다. 이들은 각각 200만∼400만㎾급 화력발전소를 짓는다는 계획을 제시했으며, 투자금액은 8조~11조원에 달한다.
애초부터 기업들의 경쟁이 뜨거웠지만, 갈등이 첨예해지기 시작한 건 최근 삼척시의회가 동양 동부 포스코 등 3개 기업에 대해서만 동의를 해주고, STX와 삼성은 거부하면서부터다. 최종 사업자는 중앙정부가 100점 만점에 ▦사업계획서 75점 ▦주민동의서 15점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시의회 동의 10점 등 배점에 따라 정하게 되는데, 지자체 동의에서 0점을 받게 된 삼성과 STX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모든 기업들이 오랫동안 준비해왔기 때문에 사업계획서 등에선 큰 점수차이가 나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지자체 동의 0점을 받은 기업은 사실상 탈락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삼척시의회는 가부 배경에 대해 "난개발 등을 방지하고 지역발전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STX 관계자는 "지자체 동의안을 받지 못하면 정부로부터 최종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없다. 시의회가 뚜렷한 부결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동의안을 부결시킨 건 사실상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삼성과 STX는 시의회에 재심의를 요청한 상태. 이에 시의회를 통과한 동양 동부 포스코는 "재심의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지역사회도 갈라지고 있다. 실제로 동양그룹은 계열 동양시멘트 본사가 삼척에 있을 만큼 이 지역의 사업기반 뿌리가 깊고, 동부그룹은 삼척이 고향인 기업이다. 이를 두고 지역 내에선 "오랫동안 뿌리를 내려오고 애정이 깊은 연고기업을 밀어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시각과 "연고를 떠나 실질적으로 지역에 혜택을 줄 기업을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 있는 상태다.
일부 지역주민들은 시의회를 항의 방문하거나 청와대, 국민권익위원회에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삼척시의회 규탄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김진영 위원장은 "삼척시도 5개 기업을 모두 통과시켜 정부의 최종 판단을 받아 보자고 했는데 시의회는 특정기업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지자체에서 알아서 할 일'이란 입장이지만, 한 당국자는 "뚜렷한 이유 없이 STX와 삼성을 배제함으로써 후유증의 소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갈등이 확산되면서 당초 연내 확정돼야 할 제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도 해를 넘기게 됐다. 삼척 케이스뿐 아니라 액화천연가스(LNG)복합화력, 원자력발전소 등에 대한 로드맵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 전문가 평가, 공청회, 전력정책심의회 심의 등 절차를 감안하면, 결국 삼척 사업자선정을 포함한 전력수급 기본계획 확정은 차기 정부로 넘어간 셈이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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