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살려준 게 민화에요.'하면 된다'는 말을 팔순이 돼서야 실감하고 있어요."
나이로만 치면 내리막길인 팔순의 허범순 할머니에겐 희망이 생겼다. 조선후기 서민층에서 유행하며 생활공간의 곳곳에 장식으로 그려졌던 그림, 민화 때문이다. 몸져누워 삶의 의욕을 상실했을 때 만났던 민화는 이제 친구이지 위안으로 자리잡았다.
허씨는 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허리도 구부정하고 오래 앉아있지 못하지만 민화를 그릴 때만큼은 행복하다"며 "취미 삼아 그리는 민화가 이제는 노년인 내 삶에 전부가 됐다"고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미술을 단 한 번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그가 붓을 잡은 건 아주 우연이었다. 3년 전 뉴질랜드에 사는 딸을 만나러 갔다가 2층 계단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지고 꼬리뼈가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다. 수술 후 2개월 동안 입원했지만 회복이 늦어지면서 남편과 자녀들의 걱정이 깊었다고 한다. "식음전폐하고 있을 때 딸이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가져와서 그림이라도 그려 보라고 하더군요. 몸도 마음도 쇠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과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싶었죠. 하지만 펜을 잡는 순간 새로운 활력소가 됐어요."
퇴원한 뒤에는 먹과 붓으로 수묵화를 주로 그렸다. 그러다 작년에 그의 그림을 눈여겨보던 한 지인의 소개로 경기 수원의 혜정민화협회에서 주관하는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민화와 본격 인연을 맺었다. 이때부터 민화에 집중한 허씨는 6월 강릉 단오제에도 민화를 출품, 입상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또 한국민화협회에서 주관하는 전국민화대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지난 10월 8일부터 6일간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전시관에도 걸렸다. 붓을 잡은 지 불과 2년만의 쾌거였다.
허씨의 아들 최성욱(57)씨는 "정식 교육을 받지도 않고 노년에 스스로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에 자식으로서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4녀1남의 교복과 남편의 외투를 직접 만들어 입혔다. 5남매의 옷도 옷감을 떼어다 손수 만들었을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지만 어려운 시절이라 재능을 살릴 방법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예술 쪽에 소질이 있다는 걸 발견한 것에 만족해요.'하면 된다'는 말이 내게 적용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뒤늦게나마 스스로 만족하면서 사는 게 인생인 듯해요."
거동이 불편한 그는 간신히 앉아서 1~2시간 작업한다. 작업실도 없어 6폭 병풍 작품은 3~4개월이 걸릴 만큼 작업 시간이 더디다. 그러나 내년 봄이면 작업실이 생긴다. 아들 최씨가 경기 화성 집에 전시공간을 마련해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허씨는 "품위 있는 노후를 맞고 싶다면 민화 그리기가 안성맞춤"이라고 활짝 웃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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