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자판을 보면 알파벳 26자와 한글 자모 33자가 왼쪽 상단부터 오른쪽 하단까지 26개 키에 분할된 채 질서정연하게 배열돼 있다. 예컨대 Q W E R T와 ㅂ/ㅃ ㅈ/ㅉ ㄷ/ㄸ ㄱ/ㄲ ㅅ/ㅆ이 각각 한 키에 함께 분배돼 있는 식이다. 우리는 이렇게 활자가 새겨진 26개의 버튼을 이리 치고 저리 눌러 국문으로든 영문으로든 글을 쓴다. 때로는 진심어린 이야기를 고백하기도 하고, 때로는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소리를 재탕하기도 한다. 혹 지금 누군가는 자판의 버튼을 눌러 이제까지 객관적으로 공인되고 다수가 믿는 사실을 무너뜨릴 메가톤급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지 모른다. 반대로 여러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떠다니는 정보를 긁어모아서는 위변조 문서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는 Q W E R T나 ㅂ/ㅃ ㅈ/ㅉ ㄷ/ㄸ ㄱ/ㄲ ㅅ/ㅆ이 자체로는 단지 활자일 뿐이고, 사용자가 그 낱낱을 자신의 뜻에 따라 조합해야 글자가 되고 문장이 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흔히 자판은 수동적 도구이며 우리 각자가 자기 의지와 생각을 언어화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 자판의 배열이 무작위로 던져진 것이 아니라 특정 언어 사용자 집단의 사고체계, 언어습관, 손동작, 방향 감각 등을 분석한 후 만들어진 과학체계라는 바로 그 이유에서 우리는 이미 특정 언표(言表)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새로운 지식을 내놓기보다는 과거 서구가 축적한 지식이 구성되고 조직된 조건들, 관계들, 역학들을 연구함으로써 근대 이후 지식의 진보에 기여했다. 스스로 "지식의 고고학"이라 부른 그 연구 방법론에서 핵심 연구 대상 중 하나가 언표다. 이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푸코는 프랑스 타자기의 자판을 예로 들었다. 예를 들어 그 타자기 자판의 왼쪽 상단은 A Z E R T 단추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것은 프랑스 타자기가 선택한 알파벳 순서에 관한 언표인 것이다. 그 순서는 영어권에서는 Q W E R T로 배치되고, 한국어 자판에는 ㅂ/ㅃ ㅈ/ㅉ ㄷ/ㄸ ㄱ/ㄲ ㅅ/ㅆ로 아예 활자부터 달리 구성된다. 이 가시적 차이들을 만들어낸 지식의 질료, 질서, 체계, 관계 망이 바로 각 문화권의 언표다. 한글 자모도, 알파벳도, 자판도 주어진 사실들이다. 하지만 그 사실들이 구성되는 조건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각 문화권으로 분리된 지식의 역사를 갖게 됐다.
이쯤에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를 말하는 것이 좋겠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여야 두 후보의 선거운동이 맹렬해지는 가운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중의 흥미를 가장 자극하는 것은 상호 비방이다. 그런데 요사이 비방은 디지털 기술의 혜택인지 당사자들뿐 아니라 유권자들까지 과거 어느 때보다 꼼꼼하고 논리적이다. 예를 들어 어느 후보가 유세에서 입은 겉옷은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고 10만 원 안팎짜리여서 서민적인데, 상대편 후보의 홍보 영상에 찍힌 그 집 의자는 수입품에다가 수백만 원을 호가하니 과연 나라 살림을 맡겨도 좋겠는가, 이런 식이다. 근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여론을 호도하려 들거나 무조건 원색적인 음모론만 펼치던 예전과는 다르게 각종 사실들을 가지고 싸우니 누군가는 우리 문화가 진보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팩트'라는 영어 단어를 남발하며 내놓고 있는 그 사실들은 사실 많은 경우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앞서 자판의 키처럼 낱개인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서 내놓는 자의적 해석 및 혼탁한 의견인 경우가 허다하다. 진짜 팩트는 키에 불과한 것들에 의미의 고리를 엮고, 맥락을 조직하고, 물고 물리는 관계를 만드는 주체이자 그 주체의 의도 및 실행이다. 우리가 지금 팩트라 믿는 것들, 그렇게 믿으라고 강요받는 것들이 그 진짜 팩트를 가리는 베일이다. 인터넷의 수많은 문서와 이미지를 나노 단위로 쪼개 분석해도 우리가 진실에 이르기 쉽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강수미 미술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