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에 기대 고성장을 이어온 동남아 국가들이 변하고 있다. 경제 성장의 주역인 노동자들이 "이제 파이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표를 의식한 지도자들도 노동자의 목소리에 동조, 일제히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성장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6일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온 동남아 국가들이 임금인상과 경쟁력유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지난달 수도 자카르타의 내년 최저임금을 44%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2일에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이 "저임금의 시대는 끝났다. 노동자의 복지는 우리의 의무"라고 선언했다. 태국 정부는 4월 일부 지역의 최저임금을 40% 올린 데 이어 나머지 지역도 내년 중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내년부터 전국적으로 최저임금제를 시행할 예정이고, 오랜 고립을 벗어나 개방에 나서는 미얀마도 최저임금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지난달 중국 출신 버스운전사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30년 만에 파업을 벌였다.
WSJ은 동남아 지역이 좋은 경제 성적표를 유지하면서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목소리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3분기 경제성장률이 인도네시아 6.2%, 말레이시아 5.2%를 기록하는 등 세계 경제위기 와중에서도 선전했다. 올해 태국 증시는 30% 가량 상승했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 10개국의 국내총생산은 모두 합하면 2조달러에 육박한다.
재계는 임금인상의 여파로 투자가 썰물처럼 빠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크레디트스위스의 마이클 완은 "많은 기업들이 사업체를 유지할지 고민하며 정부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며 "고비용 때문에 기업들이 백기를 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기업들은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로비를 강화하고 있고, 말레이시아 재계에서도 최저임금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임금인상이 당장 경쟁력저하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WSJ은 "자카르타의 최저임금 44% 인상이 큰 폭처럼 보이지만 주요 기업들의 임금은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고 인건비 비중도 작기 때문에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제조업 경쟁국인 중국에 비하면 임금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HSBC의 수 시안 림은 "임금인상이 외국인 투자나 물가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민간소비 증진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