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협과 판결 달라졌나, 앞으로 있을 재판 영향은…
주택담보대출시 고객들에게 부담을 지운 근저당권 설정비를 은행이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한달 전 신용협동조합을 상대로 한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근저당 설정비 반환 책임을 인정한 것과 상반돼 향후 상급심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부장 고영구)는 베스텍엔지니어링 외 270명이 국민은행에게 “근저당권 설정비 4억3,200만원을 돌려달라”고 제기한 부당이득금반환 소송을 기각하고 소송비용을 원고가 부담하라고 6일 판결했다. 이날 같은 법원 민사 33부(부장 이우재)도 장모씨 등 50명이 농협은행 등을 상대로, 강모씨 외 48명은 중소기업은행 등에게 각각 제기한 같은 취지의 소송도 모두 기각했다. 앞서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지난달 27일 이모씨가 신협을 낸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약관에서 금융사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금융사가 부담할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했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근저당권 설정비를 고객에게 부과한 것 자체는 불공정 약관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은행이 고객에게 설정비를 내고 더 낮은 금리에 대출을 받을지, 혹은 설정비를 내지 않고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에 대출을 받을지 등 약관 내용을 설명하고 선택하도록 했기에 불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달 신협 재판결과와 이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신협은 고객에게 근저당 설정비를 부담시키면서도 어떠한 설명도 없었고, 금리조차 깎아주지도 않아 법원은 불공정 약관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이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설정비를 은행이 부담하도록 개정한 표준약관에 대해서도 “이는 공정위가 개정 표준약관을 사용하도록 한 처분이 적법한지를 가린 것일 뿐 그렇다고 자동으로 그 전의 약관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계약 당시 약관이 어떻게 설정됐느냐에 따라 불공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특히 이번 소송 자체를 상행위에 관한 것으로 보고 소송시효를 5년으로 명시해 향후 비슷한 소송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설정비 반환소송을 진행한 금융소비자원 등 시민사회단체는 “이익 반환소송인 만큼 소멸 시효가 10년”이라며 금융권이 이 기간 동안 거둬들인 부당이득 10조원을 돌려달라고 주장해왔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판결이 불합리하다며 항소할 계획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소비자의 권익을 무시하고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판결”이라며 “즉각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금융소비자연맹 1만명(220억원), 법무법인 태산 6,905명(195억원), 한국소비자원 4만2,000명(220억원) 등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패소할 경우 수조원대를 부담해야 했던 은행권은 이번 판결로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비슷한 취지의 소송이 줄 잇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이달 20일 대출자 30여명이 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 1심 판결이 예정돼 있다. 은행들은 남은 재판도 사안이 중대한 만큼 11일 은행연합회에서 관련된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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