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바라는 사회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또 벌어졌다.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PS넷은 롯데백화점과 계열 대형마트ㆍ편의점 매장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설치ㆍ운영하는 업체다. 롯데PS넷은 2008년 중소기업인 네오ICP라는 회사에 ATM 납품 및 관리를 맡겼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네오ICP가 개발한 ATM 운용프로그램을 통째로 넘기라고 압력을 가하더니 급기야 그 기술을 컴퓨터에서 훔쳐 챙긴 뒤 협력관계를 끊어버렸다.
기술력 좋은 중소기업을 협력업체로 끌어들인 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야금야금 기술만 빼앗고 버리는 악덕 대기업 횡포의 전형적 사례다. 네오ICP가 3년여에 걸쳐 ATM 관리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쓴 연구개발비만도 약 100억여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롯데PS넷의 배신으로 이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당장 기술 탈취 및 협력관계 단절로 인한 피해만 74억원이며, 미래 수익 등을 감안한 손실은 약 3,5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대기업이 '슈퍼 갑(甲)'의 위치에서 '을(乙)'인 협력사에 자행하는 납품단가 인하, 가격 후려치기, 인력 빼가기, 기술 탈취, 일감 빼돌리기 등의 횡포는 대기업엔 일시적으로 득이 될 지 몰라도 사회적으론 기업생태계를 뒤흔드는 악덕이다. 이번 일로 네오ICP 같은 회사가 개술개발의 보람도 없이 무너진다면, 앞으로 새롭고 유망한 분야에서 모험적인 기술개발에 나설 창의적 기업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롯데 같은 대기업 때문에 지난해에 이미 기술 탈취에 따른 손해액의 3배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나아가 박근혜ㆍ문재인 대선 후보들도 협력업체에 대한 대기업의 불공정 횡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강화하는 방향의 공정거래법 개정을 공약하고 있다.
경찰은 ATM 프로그램 절도 혐의와 관련해 롯데PS넷 대표이사 등을 기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단순 절도가 아닌 만큼, 향후 공정거래법 적용은 물론 민사상 손배소 등에서도 엄정히 처리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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