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18대 대선 첫 TV토론에 만감이 교차했다. TV토론이 처음 도입돼 54회의 공식ㆍ비공식 토론회가 열린 1997년 15대 대선의 기억이 맨 먼저 되살아났다. 시청률이 최고 53%가 넘을 정도였던 당시의 TV토론은 이회창ㆍ김대중ㆍ이인제 후보의 3자토론 형태였고, 승자는 김 전 대통령이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DJP 연합'과 이인제 후보의 확고한 완주 태세로 '승리 공식'을 만든 상태에서 TV토론으로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발군의 기억력과 조리 정연한 말솜씨에 덧붙인 담대한 자세로 최종 걸림돌인 '반 DJ 정서'를 희석했다.
2002년 16대 대선 TV토론도 그런대로 볼 만했다. 노무현ㆍ이회창ㆍ권영길 후보가 27회나 토론회를 가졌고, 최고 34%가 넘는 시청률을 보였다. 정몽준 '국민통합 21'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한 노 전 대통령이 이 후보 못잖은 안정감을 자랑했고, 권 후보는 느긋한 자세로 토론회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노ㆍ이 양대 후보의 발언은 다 잊어도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라는 권 후보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인기 절정의 드라마 못지않게 국민의 눈길을 끌었던 TV토론은 2007년 대선에서 갑자기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지지도 격차가 워낙 커서 승패가 기정사실로 굳어진 것이 기본 요인이지만,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등장인물이 이회창ㆍ문국현ㆍ권영길ㆍ이인제 후보를 포함한 6명으로 늘어나 공식 TV토론이 잡화점처럼 되어버린 영향도 컸다. 미리 지지후보를 어느 정도 골라놓고 최종 선택을 앞둔 마지막 참고자료로 TV토론을 활용하겠다는 대다수 유권자에게 유력 후보 사이의 논쟁은커녕 독자 발언 기회조차 거의 주어지지 않은 TV토론은 관심 밖일 수밖에 없었다. 최고 시청률이 21.7%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대선 첫 TV토론 시청률이 34.9~36.2%에 이르렀다니 유권자 관심으로는 2002년 대선 때로 되돌아간 듯하다. 박근혜 후보가 오차범위 안에서 문재인 후보에 앞서는 여론조사에서 보듯, 팽팽한 득표경쟁이 가장 큰 요인이다. 아울러 박ㆍ문 두 후보 외에 '여론조사 지지율 5% 이상 또는 국회 의석 5석 이상 정당 후보'라는 요건을 충족하는 후보라고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밖에 없어 2002년처럼 '3자 토론'형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양새가 비슷하다고 내용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제3 후보의 위상과 역할이 너무 달라졌다. 지지율이 0.5% 내외인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절정기에는 지지율이 두 자릿수에 이르렀던 권영길 후보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진보정당 건설 방편이라는 출마 명분도 지난 총선 이후의 잡음과 이합집산으로 흐릿해졌다. 더욱이 최근 야당의 전통적 중도보수 노선이 진보 쪽으로 많이 기울어 진보정당의 독자영역마저 좁아졌다. 가장 뚜렷한 것은 이ㆍ권 두 후보의 언행에서 드러난 품성과 여유로움의 차이다. 이 후보는 스스로의 출마 동기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라고 밝혔다. TV토론에서 가장 먼저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언급했지만, 자신은 최소한의 예의도 보여주지 못했다. 최대한 날카롭게 말의 칼날을 세워 찔러대는 자세는 칼등으로 상대의 어깨를 때리던 권 후보와는 너무 딴판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20% 가까운 유권자가 그의 '활약'을 평가했다지만, 대개의 방송 반응이 그렇듯 자극적 언사에 대한 즉흥적 반응에 가깝다. 남는 게 없는 자학적 몸 개그를 즐기는 관객도 언제나 그 정도는 된다.
진지한 토론이나 다큐멘터리에 이런 몸 개그가 끼어들어 전체 흐름을 흐트러뜨리는 일을 유권자들이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하나. 참가 요건을 강화해 실질적 양자토론으로 이끄는 선거법 개정의 시급함을 일깨운 게 그나마 이번 TV토론의 공이라면 공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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