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지하철에서 철로에 추락한 남성이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진이 현지 신문에 게재돼 파문이 일고 있다. 사진기자를 포함한 주변 승객들이 남성을 구할 수 없었는지, 이런 끔찍한 장면을 보도할 필요가 있었는지 등을 둘러싼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열차에 치여 사망한 희생자는 한인 교포였다.
뉴욕포스트는 4일자 1면에 철로에 떨어진 남성이 승강장에 팔을 얹은 채 다가오는 열차를 바라보는 사진을 싣고 '이 사람은 곧 죽는다'는 제목을 달았다. 이 장면은 3일(현지시간) 낮 12시 30분쯤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역에서 촬영한 것으로 당시 열차를 기다리던 뉴욕포스트의 프리랜서 사진기자 우마르 아바시가 찍었다. 촬영 직후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낀 한기석(58)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목격자들은 한씨와 말다툼을 하던 남성이 한씨를 밀어 철로에 떨어뜨렸다고 증언했다. 이 남성이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자 한씨가 "당신이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있다"고 항의하면서 언쟁이 시작됐다. 한씨가 철로로 떨어지자 승객들은 손을 흔들어 열차를 세우려 했지만 참변을 막지 못했다. 한씨를 민 남성은 사건 발생 직후 도망쳤다. 현장을 목격한 이드밀손 사비는 "한씨가 술에 취해 대담하게 행동한 것 같다"며 "한씨는 좋은 일을 하려 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뉴욕 퀸즈 앨름허스트에 부인, 대학생 딸과 거주하는 한씨는 한때 세탁소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포스트 보도가 나가자 언론윤리 등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NBC방송 일기예보 진행자 알 로커는 "사진을 찍으면서 왜 올라오도록 돕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뉴욕포스트 홈페이지에도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사진을 찍는 게 더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뉴욕 지하철에도 빨리 스크린도어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등의 글이 줄을 이었다. 또 NYT가 홈페이지에 '이 사진을 보도해야 했을까'란 제목으로 문제의 지면을 공개하자 NYT에도 선정주의를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진을 찍은 아바시는 "돕고 싶었지만 현장이 멀었고 상황이 너무 빨리 벌어졌다"며 "열차에 경고 신호를 하기 위해 계속 플래시를 터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을 편집자에게 전달했지만 게재 결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플로리다주 포인터언론연구소의 보도윤리 전문가 케니 어비는 "기록하느냐 돕느냐는 사진가들이 재난 앞에서 종종 직면하는 문제"라며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경우) 도우려는 시도는 있었다"면서도 "사진 게재를 결정한 편집진은 비판 받아야 한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존 롱 미국사진가협회 윤리위원장은 "사진가는 돕는 게 가능하다면 촬영보다 먼저 구조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9년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해 '지하철 영웅'으로 불리는 차드 린지는 "그런 상황이 닥칠 때까지는 자신의 근육이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모른다"고 NYT에 말했다.
경찰은 4일 오후 용의자 나임 데이비스(30)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용의자는 행상의 짐을 나르는 등 임시직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