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연예 주간지 소설에는 자가용 운전기사가 자주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상 사모님과의 불륜관계를 이용해 돈을 뜯으려다 함께 파멸하는 줄거리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가용 운전기사들이 정치권의 금품 수뢰사건의 제보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무소속 현영희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공천 헌금' 사건을 제보한 현 의원의 전 운전기사 정모씨가 대표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씨에게 선관위 사상 최고액인 신고포상금 3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받았던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도 운전기사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홍 전 의원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지목된 H사 대표의 전 운전기사 고모씨가 선관위에 제보하면서 담배상자에 돈이 들어 있는 모습, 홍 전 의원 사무실 전경, 쇠고기 선물세트 및 운송장 사진 등을 함께 제출한 것이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 등의 사건에서도 운전기사의 제보와 역할이 수사에 큰 도움이 됐다.
■독일 작가 롤프 도벨리의 에 운전기사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후 독일 전 지역에서 강연 요청을 받았다. 그는 양자물리학에 대해 3개월간 20회 이상의 똑 같은 강연을 반복했고, 그의 운전기사는 그 내용과 질의응답 방법까지 다 외우게 됐다. 어느 날 플랑크가 피곤해 하자 운전기사가 대신 강연을 하고, 플랑크는 청중석 앞자리에 운전기사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강연 말미에 한 물리학교수가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운전기사는 기지를 발휘, "뮌헨처럼 발전된 도시에서 그처럼 단순한 질문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 정도는 제 운전기사도 알고 있으니 그에게 부탁하겠습니다"며 위기를 넘긴 것이다. 운전기사는 차주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아는 인물이다. 잘 협조하면 플랑크의 경우처럼 큰 도움이 되지만 자칫하면 큰 화를 입는다. 아무튼 최근 들어 자가용 운전기사들이 우리 정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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