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PS넷으로부터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핵심 프로그램을 탈취당한 중소협력업체 네오ICP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지난해 4월 2,600여개 1차 협력사와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을 체결하기도 한 롯데그룹의 계열사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네오ICP는 "10여 년간 투자해 개발한 핵심 기술이 탈취당해 회사가 존립의 기로에 서 있다"며 "겉으로는 상생경영을 내세우지만 우월적 지위를 부도덕하게 휘두른 대기업의 횡포에 당했다"고 한탄했다. 앞서 서울경찰청은 3일 네오ICP가 보유한 ATM 운영 핵심프로그램을 빼낸 혐의로 김모(45) 대표이사 등 롯데PS넷 관계자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4일 네오ICP에 따르면 2008년 12월 계약을 체결해 롯데PS넷에 ATM 납품과 관리업무를 맡아오던 네오ICP는 지난해 10월 롯데PS넷으로부터 ATM 운영 프로그램을 넘겨달라는 요구를 처음 받았다. 고객이 ATM에서 입출금 등 서비스 이용 시 카드 인식, 위조지폐 여부 판독, 고객이 요청한 액수에 맞는 지폐수량 제공 등을 거쳐 은행 전산망에 거래 내용을 전달하는 30여개 프로세스를 담고 있는 핵심프로그램이다. 1998년 설립된 네오ICP는 4년 넘는 연구 끝에 2001년 이 프로그램을 개발, 새로 출시되는 카드를 인식하도록 44차례 업그레이드(44버전)해 업체들에 ATM 운영, 유지ㆍ보수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연구개발비만 100억원이 들었다.
회사의 생존권이 달린 기밀을 넘겨줄 수 없었던 네오ICP는 롯데PS넷의 요구에 버티다 지난해 12월 ATM 서비스를 이용할 때 모니터 안내 화면과 멘트 등을 담은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만 롯데 측에 넘겨줬다. 하지만 롯데PS넷은 올 1월 다시 핵심프로그램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양 회사가 이 문제로 한 달 여간 옥신각신하던 올 3월 롯데는 돌연 'ATM 개발부서를 신설한다'는 사실을 네오ICP에 알린 뒤부터 핵심프로그램을 요구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롯데PS넷이 자기 회사에 파견된 네오ICP 직원의 노트북에서 몰래 이 프로그램 기술을 빼돌린 것은'39버전'이 개발된 올 3월 6일이다. 롯데PS넷이 이 기술을 손에 넣은 뒤 기술 이전 요구를 거두고 잠잠해진 것이다.
네오ICP가 롯데PS넷의 기술탈취를 알아차린 것은 두 달여 뒤인 5월. 네오ICP가 제공하지도 않은 '45버전'을 ATM에 적용한다는 메일을 롯데PS넷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이상한 생각이 든 네오ICP가 문의하자 롯데PS넷은 "우리가 직접 개발했다"고 답했다. 네오ICP가 롯데PS넷의 '45버전'을 분석한 결과 '39버전'개발 시에는 있었지만 '44버전'에는 해소가 된 '버그(오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롯데PS넷이 '39버전'을 빼돌린 것으로 판단한 네오ICP는 한 달 뒤인 올 6월 경찰에 신고했다.
이 와중에 롯데PS넷은 핵심프로그램 이관을 조건으로 내건 입찰제안서까지 보내왔다. 네오ICP 관계자는 "17년간 ATM업계에 있었지만, 이런 요구를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입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롯데PS넷의 기술탈취로 인한 피해액에 대해 74억원이라고 밝혔지만, 네오ICP는 향후 10년간 매출 손실 등을 감안하면 3,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네오ICP는 이 사태를 겪으며 당장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로 피해를 보고 있다. 지난해 약 600억원이었던 매출액이 올해 200억~300억원으로 반토막이 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네오ICP의 강우권(42) 신사업본부장은 "가장 큰 고객이자 파트너였던 롯데PS넷이 무리한 요구를 해와 재계약이 불발되는 바람에 올 매출이 전년에 비해 약 60% 급감했다"며 "경영지원팀은 이제 직원 월급 줄 일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거리가 줄어 최근에는 직원 1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롯데PS넷 관계자는 "2008년 12월 체결한 ATM 공동개발 계약서에 개발비용을 지원하고, 소유권은 갑(롯데PS넷)에게 있다는 내용의 문구를 명시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간 해석상 오해가 생겨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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