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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칼럼/12월 5일] 조선 유부녀의 위험한 불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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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칼럼/12월 5일] 조선 유부녀의 위험한 불꽃 사랑

입력
2012.12.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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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이생이라는 선비와 초옥이라는 유부녀의 연애이야기를 담은 작자 미상의 이란 소설이다. 이생은 사십 줄에 들어 선 가난한 선비로 친구 따라 서울 와서 장진사 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과거 공부를 하는 중년의 사내다. 초옥은 열일곱 살의 유부녀로 어려서 양반댁의 시녀로 지낼 때 글을 배워 글재주가 뛰어나고 미모와 열정과 재능을 고루 갖춘 여인이었다. 그녀는 글을 아는 남성과 흉금을 터놓고 문학과 인생을 얘기하는 '포의'(布衣)의 관계, 즉 대등하고 인격적인 관계 맺기를 꿈꾸고 있었지만 신분상의 제약으로 장진사 행랑에 세 들어 살다가 이생을 만났을 때는 혼인을 한 지 일 년쯤 지난 뒤였다. 남편과는 일종의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라 애정이라고는 없이 그저 형식적인 아내 노릇을 하며 살고 있던 초옥은 오다가다 눈여겨 본 이생을 마음에 담아둔다.

한편 초옥에게 반한 이생은 어느 날 물을 한 그릇 달라고 청한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밤새도록 문학과 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밤을 보내게 된다. 그날 밤 이생이 육체적인 접근을 하지 않자 그녀는 그에게 깊은 애정과 신뢰를 갖는다. 그 후 적극적으로 사랑의 결합을 촉구한 초옥은 두 사람의 사랑을 이끌어 간다. 초옥은 자신의 사랑에 대해 주저하거나 회의하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생과의 관계를 눈치 챈 남편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고 칼부림도 당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얼떨떨해질 지경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사랑을 공표한다. 오늘날 우리들의 눈에도 잘했다고 보기 어려운 불륜을 저질러 놓고, 초옥은 '곧은 행동'이었다고 선언한다. 죽음으로 사랑을 관철시키려는 초옥의 기세에 눌린 시아버지는 이생과의 관계를 모른 척 용인하게 된다. 반면 이생은 고향집에 아내도 있고, 초옥과 살림을 차릴 만큼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늘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

반대로 초옥은 자신의 전부를 바쳐 이생을 사랑한다. 인물도 볼품없고, 나이도 많고, 유부남이고, 학문도 부족한 선비를 사랑하는 초옥은 애초에 이생을 멋진 남성으로 오해한 것이 아니다. 초옥은 이생과 인격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맺은 것이며, 그 관계를 승화시키고자 현실과 싸운 것이다. 이생과 한동안 헤어져 있을 때 이생의 친구가 자신을 소유하고자 몸부림치는 부유하고 젊은 장중약과 맺어주려고 하자, 초옥은 "지금 이 세상의 번화한 도시에는 벼슬아치와 귀공자, 부유한 상인과 호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저는 이 모두 원치 않고 오로지 이 낭군만을 택했으니, 쇤네의 마음을 아시겠지요?" 이렇게 말하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런데도 헤어져 있는 동안 초옥의 정절을 의심하기만 하던 이생은 어리석게도 장중약의 욕망을 초옥에게 전달하는 뚜쟁이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결정적 실수였다. 자신이 이생에게 하찮은 여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초옥은 미련 없이 자신의 사랑을 거두어버린다.

남녀가 만나 서로 반하고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다가, 어느 순간 이별하고 사랑이 끝나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에 수없이 널려있다. 그러나 초옥은 사랑이 끝났다고 울고불고 하지도 않았고, 구차하게 미련을 두지도 않았고,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죽음을 무릅쓰고 열정을 바쳤던 사랑의 대상이 그녀가 꿈꾸던 이상형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자유로워졌으며, 사랑이 끝난 뒤에도 그녀의 자유로운 인생은 지속되었다.

인생의 한 순간에 선택한 위험하고 불꽃같은 사랑을 위해 신분이나 제도나 사회의 통념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목숨까지 던지며 살다 간 초옥의 사랑은 남성을 위한 정절과 순결과 희생으로 범벅이 된 '춘향'이나 '운영'이나 '숙향'의 사랑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녀의 사랑은 현대 어느 여성의 사랑보다도 자주적이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다.

은 사랑이란 문제를 남성이 아닌 여성의 주체적인 행동 위주로 끌어감으로써, 아직도 봉건적 가치관에 찌들어 있는 우리 남성들의 일방적인 욕망을 교란시키고 단절시키는 혁명적인 소설이다.

동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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