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년대 유신 반대투쟁에 청춘을 걸었던 민주화 운동의 원로 몇몇 분들에게선 오래 단련된 무인(武人) 같은 기운을 느끼곤 한다. 그 분 역시 어투와 몸짓은 낮고 온화하지만, 그 어딘가엔 여전히 푸른 대쪽 같은 강기(剛氣)가 얼비치곤 했다. 꼿꼿하되 편벽되지 않아, 보수니 진보니 편들기가 아닌 원만하고 현철(賢哲)한 말씀이 기대됐다.
"어떠세요, 박근혜가 될 것 같습니까 아니면 문재인이 되는 겁니까?"
오랜 만에 모시고 몇몇이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 "에이, 내가 뭘"하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이내 표정이 진지해진다.
"글쎄, 내 보기에 박은 차분하게 추스르는 것 좀 할 것 같아. 그래서 민심이 더 이상 해이하고 어지러운 게 싫다면 박이 되겠지. 문은 뭔가 더 바꾸겠다는 것 아니오? 따라서 민심이 더 바꿔야겠다 싶으면 문이 될 거고."
역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식의 초연한 말씀이었지만, 오랜 재야의 고수가 새삼 우리 사회의 해이와 어지러움을 거론한 게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해이와 혼란을 거론했을 때 정작 떠오른 현실은 정치보다는 교육이었다. 근년 들어 우리의 교육계야말로 설익은 실험과 아집, 현실과 괴리된 이념 과잉의 아젠다 같은 것에 휘말려 대립을 되풀이하면서 지향점 없이 표류해왔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실형으로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보수와 진보에 걸쳐 무려 5명의 후보가 난립하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교육계의 혼란이 반영된 편치 않은 현실인 셈이다.
사실 국민이 교육에 바라는 건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아이들이 지(知)ㆍ덕(德)ㆍ체(體)를 조화롭게 겸비한 사회인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게 기본이다. 거기서 공부에 짓눌리지 않게 하고, 학교 폭력에 괴롭힘 당하지 않도록 하고, 잠재력을 계발하는데 효과적인 교육과정을 적용하고, 심신의 건강한 성장ㆍ발육에 도움이 되도록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해 달라는 요구가 파생한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해소와 공정한 입시제도를 개발에 대한 요구도 결국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같은 명쾌한 요구를 두고 교육계가 사분오열돼 끝 모를 혼란에 휩싸인 건 '지나친 작위(作爲)' 때문이라고 본다. 어느 쪽이든 재임 때 뭔가를 표시 나게 이뤄보겠다는 의욕 과잉과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정치적 주도권을 쥐겠다는 계산이 헛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다.
곽 전 교육감 때의 학생인권선언이나 무상급식 파문만 해도 그렇다. 누구도 학생인권 존중의 당위성이나, 학교급식 과정의 '낙인효과'가 없어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게 학교 돌봄교실 확대나 체육활동 장려 같은 보다 일상적이고 시급한 다른 현안들에 비해 특별히 부각된 건 지나친 작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 공부 문제도 턱없이 힘이 들어간다. 대부분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업에 짓눌리는 건 바라지 않지만, 끈기와 인내를 갖고 열심히 공부해 성취하는 것도 중요한 단련의 한 과정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나친 공부 부담을 덜자는 요구는 즉각 학교 시스템을 대폭 뜯어고치거나, '아이들을 시험과 경쟁으로부터의 해방시키겠다'는 과장된 구호로 이어지기 일쑤다.
백년대계라는 말도 있지만, 교육이 일조일석에 혁신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아이들을 올바로 키우는 건 섣부른 과욕이 아니라, 꾸준한 보완과 조용한 보살핌, 굳건한 소망 같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맥아더 장군은 명문 에서 '주여, 제 아이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폭풍우에 맞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정직한 패배에 의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라고 했다.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깊고 고요한 마음으로, 멀리 내다보면서 신중한 걸음으로 흔들림 없이 교육의 대계를 이루어나갈 새 교육감이 서울시의 교육을 맡게 되기를 기도해 본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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