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해' 맞아 첫번째 특강"하느님보다 빵·재물 중요시요즘 신앙 우스꽝스럽고 실망"마태복음 '진복팔단' 인용돈·권력 추종세태에 쓴소리
"우리의 강력한 동맹자들 중 하나는 교회 그 자체다. 너의 환자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새로운 교회 땅에 반쯤 지어놓은 가짜 고딕 건물이 전부다. 그가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동네 식품가게 주인이 알랑거리는 낯빛으로 황망히 다가와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기도 예식이 실린 반들반들하게 닳은 작은 책 한 권과 종교적 노래들이 잔뜩 담긴 나달나달하게 헐어빠진 책 한 권을 그에게 건네 준다. 그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면 만나기를 꺼려하며 피해 왔던 그런 종류의 이웃들을 한 무더기 발견할 것이다. …너의 환자는 그들의 종교도 어쩐지 우스꽝스런 종교임에 틀림없다고 쉽사리 믿게 될 거다."
3일 오후 7시 서울 명동성당. 빼곡히 들어앉은 800여 신도들 앞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규만(57) 보좌주교가 를 쓴 클리브 스테플스 루이스의 책 한 대목을 인용했다. 조 주교가 "지난 세기 최고의 교회옹호론자"라고 평가하는 루이스는 스쿠르테이프라는 악마가 조카 악마에게 한 수 가르쳐주기 위해 쓴 편지글을 통해 기독교를 믿어보려던 사람이 지금 교회에 얼마나 실망할 것인지를 꼬집었다.
'우리는 왜 나자렛 예수를 믿는가'를 주제로 한 이날 강연은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신앙의 해'를 기념해 17일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마련한 세 차례 특강의 첫 시간이었다. '신앙의 해'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회 쇄신사업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맞아 지난 10월 11일부터 내년 11월 24일(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 신앙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고 내놓은 선언이다.
조 주교는 교황의 '신앙의 해' 선언을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이 갈수록 약해져 가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80년대)제가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때만 해도 이탈리아 신자들은 성당보다 축구장 가는 걸 더 좋아했는데 지금은 더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라며 "1951년 49명이 사제 서품을 받은 한 이탈리아 교구는 2010년 사제서품자가 6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긴 하다. "그해(1951년) 한국 전체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9명이 사제서품을 받았지만 2010년에는 서울대교구에서만 30여명이 받았다"면서도 "(신앙의 약화가)유럽만의 문제고 우리는 괜찮으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10년 전 (천주교 신자수가)250만이던 것이 500만이 넘었다고 하는데 10년 사이 250만이나 늘어 대단한 거 같지만 거품이 있는 것 같다"며 "성당 주일 미사에는 3분의 1인 150만 정도밖에 안 돼 우리도 신앙이 대단한 게 못 된다"고 말했다.
조 주교는 이어 강연의 대부분을 기독교 신앙을 점검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으로 최근 교황이 낸 를 소개하는데 할애했다. 교황이 이 책을 쓴 목적은 예수가 누구인지 되묻고 그를 통해 "주님의 얼굴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세례, 유혹, 산상설교, 기도 등 여러 각도에서 예수를 재조명한다.
예수를 새로운 모세라고 말하는 교황은 그 증거가 산상설교라고 책에서 강조한다.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진복팔단(眞福八端)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 받는 사람들이야말로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설교다.
교황은 이 설교를 "모세 율법의 완성"으로 설명한다면서 조 주교는 그러나 "우리는 첫 구절에서 걸린다"고 지적했다. "세상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돈 열심히 벌려고 하고 권력을 가지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거꾸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해야 된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 꼭 돈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이번 강연은 대선을 앞둔 세모에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수"라는 여덟 가지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다. 나머지 강연은 박병규 신부가 이어서 교황의 1, 2권을 자세히 설명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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