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머리가 많이 길었네?" 지난번에 만날 때 짧은 단발이었던 친구의 머리는 어깨에 닿아 있었다. "응. 꽤 오래 자르지 않았거든. 그런데 우리, 얼마만이지?" 친구도 나도 저번에 만난 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을 펼쳐서 그 애의 머리칼이 얼마나 자랐는지 어림으로 재어보았다. "이만큼. 우리 사이에는 머리칼 한 뼘 길이의 시간이 흘렀어."
하긴, 친구와 나 사이에 흐른 시간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때와 이때 사이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저기와 여기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달력도 시계도 눈금도 실감나게 일러주지 못한다.
시간과 거리를 느끼는 건 항상 몸인 것 같다. 집에서 시내까지는 1. 4km가 아니라 느린 걸음으로 30분의 거리. 한국과 프랑스는 9000km가 아니라 비행기로 한 나절의 거리. 나의 하루는 12시부터 12시까지가 아니라 잠에서 잠만큼의 시간. 그래서 30시간이기도 되기도 하고 17시간이 되기도 하는 그런 시간.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새벽 세 시다. 휴대폰에 뜨는 날짜는 벌써 하루가 지나 있다. 나는 어제가 된 오늘을 살고 있다.
친구가 말을 이었다. "원래는 너를 만난 다음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려 했어. 그런데 뭐야, 마치 시간을 뭉텅 자르려는 것 같잖아." 우리는 조금 웃었다. 그리고 함께 미용실에 들렀다가 헤어졌다. 다음에 만날 때 손가락을 펼쳐 다시 우리의 시간을 헤어보기 위해.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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