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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로맨티스트 죽이기', 현대로 온 비형랑 설화… 리얼리스트의 손에 희생된 로맨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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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로맨티스트 죽이기', 현대로 온 비형랑 설화… 리얼리스트의 손에 희생된 로맨티스트

입력
2012.12.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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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5편 중 마지막 작품인 '로맨티스트 죽이기'(차근호작, 양정웅 연출)는 볼거리와 에너지가 넘친다. 출연자 15명은 모두 남자 배우다. 객석 뒤에서 고함을 지르며 달려 나와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망사 티에 검은 재킷, 레게머리를 한 차림새며 행동거지가 조폭 냄새를 풍기는 그들은 화랑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비형랑 이야기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귀신들을 부려 하룻밤새 다리를놓았다는 비형은, 신라 25대 진지왕의 혼이 생전에 탐내던 유부녀 도화의 남편이 죽자 찾아가서 낳은 아들이다. 설화는 흥륜사 문루에서 놀다가 여우로 변해 도망친 귀신 길달을 붙잡아 죽인 비형의 신통력을 전하지만, 극작가는 길달이 왜 죽임을 당했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해 이야기를 새로 짰다.

길달은 '아래는 위가 되고 위는 아래가 되는'대동세상을 꿈꾸는 로맨티스트다. 반면 길달의 친구인 비형은 '위는 위, 아래는 아래'라고 못 박는 현실주의자다. 26대 진평왕은 두 사람에게 신라의 랜드마크로 흥륜사 문루를 건축하는 공사를 맡기는데, 여기에 비자금과 정치 세력의 암투가 얽히면서 길달은 비형의 손에 죽는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라이브 영상, 강렬한 춤과 무술, 아크로바틱을 한데 풀어낸 감각적인 스타일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고급 바를 연상시키는 무대 디자인은 모던하고 깔끔하다.

풍성하고 참신한 시각적 연출 외에 이 작품에 재미를 더하는 것은 고대 설화를 불러내 생생하게 현재화하는 상상력이다. 폭동을 조장해 귀족을 제압하려는 진평왕, 음모와 계략으로 왕권을 위협하는 각간 임종, 정치자금의 큰 손으로 지하경제를 주무르는 도화 등 주요 인물들이 지금 여기 사람들로 다가온다. 그들은 밀실과 노래방, 마사지룸에서 욕망을 거래하고 신라 최대 토건 프로젝트의 성공을 축하하는 낙성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며 이상주의자를 능멸한다.

극의 구조와 밀도에는 아쉬움이 있다. 예컨대 비형이 길달을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모호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도깨비들과 함께 흥륜사 문을 짓던 길달이 파업 투쟁을 선언하는 대목 등 몇몇 군데 대사는 갑작스레 강경하고 관념적이어서 이질감이 있다. 양정웅 특유의 시각적 연출이 지나치게 많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볼 만한 연극임에는 틀림이 없다. 공연은 9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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