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4시 경기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푸른숲발도르프학교 뒷산 정상 '꼭대기극장'에 관객이 하나 둘 모였다. 꼭대기극장은 이름만 극장이지 벙커스타일의 80㎡ 규모 콘크리트 건물이다. 극장 안 무대에 오른 나이롱밴드는 와 등 10여 곡을 소화했다. 총 관객이라야 마을 주민과 멤버 가족들을 합쳐 40여 명에 불과했지만 열정적인 공연에 극장 안은 뜨거운 박수로 채워졌다. 이모(9ㆍ분원초3)양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엄마 모습을 보니 가슴이 떨리고 흥분된다"고 말했다.
이름도 희한한 나이롱밴드는 이 푸른숲학교와 남종면 분원초등학교 학부모 16명으로 이뤄진 아마추어 밴드. 멋있게 오래 하자는 의미에서 '나이스&롱'인데 편하게 발음하다 보니 어느새 나이롱이 됐다. 멤버들은 콘서트 포스터를 통해 '격려와 우려(?)속에 탄생했다'고 밝혔듯 지난해 7월 그저 음악이 좋아 뭉쳤다. 매주 목요일마다 연습한 끝에 이날 첫 단독콘서트를 갖게 됐다.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는 밴드매니저 김태엽(38)씨는 "가족들에게는 평소의 미안함을 전하고, 주민들에게는 문화예술을 공유하자는 의미의 공연"이라고 밝혔다.
도시에선 쉽게 접할 수 있는 아마추어 밴드지만 농촌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안천 옆에 자리잡은 퇴촌ㆍ남종면은 상수원보호구역에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이라 개발이 더디고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도 거의 없다. 최근 전원생활을 위해 찾아온 이주민들이 점차 늘고 있지만 기존 주민과의 유대는 약하다. 그래서 밴드 결성과 공연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나이롱밴드 활동은 올해 퇴촌ㆍ남종면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며 탄력을 받았다. 이들은 연습공간과 공연에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받았지만 첫 콘서트까지 오는 데는 멤버들의 노력도 컸다. 각자의 전공을 살려 휑했던 콘크리트 건물 안에 흡음재 대신 계란판과 헌옷, 솜이불 등을 붙였고, 천장에는 낡은 현수막들을 겹대 그럴듯한 극장 분위기를 연출했다. 건물 밖에는 조명시설과 천막, 간이화장실도 설치했다. 보컬을 맡고 있는 채만규(50ㆍ조각가)씨는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가 문화공동체 활동을 계속하게 만든다"며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계속 밴드 멤버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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