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학생인권조례를 들어 두발 규제를 없애달라고 했더니 학교에서는 '전통이 있는데 어떻게 한번에 바꾸느냐'고 하더라고요. 조례는 조례고, 어쨌든 학칙으로는 허용이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어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스터디카페에 모여 토론회를 여는 청소년 40여명의 표정은 착잡했다. 이날 모임은 서울시교육청 학생참여단 출범 200일을 맞아 열린 '학생이 함께하는 서울학생인권조례 정착화 토론회'. 청소년인권행동단체인 아수나로가 인권 조례 제정 이후 학교의 인권현실에 대한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자는 취지였다.
"현재 학생인권 현실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학생들은 "달라진 것이 없다.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고교 3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A(18)양은 "한 시간 일찍 등교해 의무적으로 영어듣기를 해야 하고, 보충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한 학생들도 방과후 2시간씩 '강제자율학습'을 해야 한다"며 "조례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침해 사례가 너무 많아 0점을 줄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학교 3학년생인 B(15)양은 "조례에서는 학칙을 개정할 때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돼 있지만 현실은 영 딴판"이라고 지적했다. B양은 "학칙 개정을 요구했던 경력 때문에 학생회장 선거출마를 못하거나, 학생참여를 독려하는 홍보물을 붙이려는 학생들이 제지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며 "학생회 임원이나 선도부 학생만 학칙 개정 과정에 참여하게 하게 하는 일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학교를 그만둔 C(16)양도 "스펙을 위해 활동하다 보니 학생자치기구가 학교를 견제하는 본래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학교뿐 아니라 학생들조차 인권침해 문제를 끄집어내고 바꾸려는 움직임을 싫어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학생인권조례와 학교현실이 어긋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서울시교육청이 1,292개 초ㆍ중ㆍ고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ㆍ고교 88.8%가 인권조례가 금지한 두발제한 규정을 학칙에 그대로 두고 있었다. 화장이나 귀걸이, 피어싱 등 장신구를 금지한 학교도 59.3%, 간접체벌(38.7%), 소지품 검사(36.6%)를 허용하고 있는 학교도 많다.
청소년들은 두발ㆍ복장과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사용 등 내용을 학칙에 기재해야 한다는 개정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대한 교육과학기술부와 시교육청의 엇갈린 해석이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과부는 이런 규제 조항을 넣어 학칙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시교육청은 학칙 기재만을 요구할 뿐 그 내용까지 정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해석을 내려 대법원에서 무효확인소송이 진행 중이다.
고등학생 D(18)군은 "두발 규제를 둔 학칙 개정을 위해 담당교사에게 문의했다가 '상위기관인 교과부가 인권조례는 효력이 없다고 말하니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며 "교육청이 아무리 조례가 유효하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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