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새 헌법 초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무르시 정권이 권력 강화에 이어 헌법 제정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자 반발도 계속됐다. 하지만 최근 정치적 혼란을 과거세력과의 대결로 규정한 무르시 측은 맞불 집회를 여는 등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무르시는 1일 제헌의회가 제출한 헌법 초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15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과도기를 끝내고 국가의 기틀을 새워야 한다"며 "이집트 민주주의의 새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무슬림형제단 등이 다수를 차지한 제헌의회는 기독교계와 자유주의 진영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새 헌법 초안을 승인했다.
야권은 이슬람 세력이 주도해 만든 헌법 초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표적 야권 인사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헌법 초안이 자유를 훼손하고 보편적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반대)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2일 무르시가 대통령의 권한을 절대화하고 사법부를 무력화하는 포고령을 발표한 후 항의 시위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1일에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을 점거한 수천명은 헌법 제정 계획에 반대하는 뜻으로 신발을 벗어 들고 시위했다.
무르시를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도 열렸다. 무슬림형제단 등이 주축이 된 시위대 10만여명은 1일 카이로대에 모여 "국민은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AP통신은 이집트의 정치적 논란이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을 옹호하는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의 대결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고 전했다.
무르시 측이 권력 강화와 헌법 제정을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과거 세력과의 대결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무르시는 29일 "권력 이양을 망치려는 세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실제적이고 긴급한 위협이 있다"고 말했다. 무르시 측은 위협 세력으로 판사 등 호스니 무바르크 전 대통령 시절 인사들을 지목한다. 무르시의 정치고문 바키남 엘 샤르카위는 "새로 만들어진 민주적 기관들은 공격을 당하지만 얄궂게도 과거 기관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과거 정권 인사들이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 등에 합류해 다시 등장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출신의 모나 엘 고바시 미국 버나드칼리지 교수는 "국민이 선출한 기관을 약화시키려는 기득권 세력이 존재한다"며 "일부 전 정권 인사들이 (무르시) 반대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무르시가 대중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지 않은 것은 실책"이라며 "무르시의 일방적 발표는 무바라크 시절로 퇴행한 것처럼 느껴졌다"고 지적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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