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스포츠 팀마다 굵직굵직한 족적을 남긴 명문 가문들이 있다. 이들 명가들은 한 두 해의 성적에 따라 급조되거나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젊은 피의 수혈로 혈통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수많은 스타들은 명멸을 거듭해도 명가의 브랜드가 여전한 이유다.
축구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 야구의 뉴욕양키스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선 해태 타이거즈가 있다. 그리고 육상에선 배문중ㆍ고등학교가 꼽힌다. 1966년 학원 설립자 고 조서희 선생의 '마라톤 애정'으로 창단된 배문육상부는 46년 동안 국가대표 100여명을 배출한 한국 육상의 젖줄이었다. 실제 육상 중장거리팀을 맡고 있는 지도자 중에 배문 출신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배문 육상부는 단지 선수들을 가르치고 길러내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육상에 소질이 있다고 소문만 나도 인재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가리지 않고 스카우트 손길을 펼쳤다. '말은 제주도로 육상인은 배문으로 가라'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조남홍(50) 감독이 이끈 배문 육상부는 이번 제58회 경부역전마라톤에서 서울이 경기도를 따돌리고 종합 2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산파역을 도맡았다. 서울 대표팀 남녀 19명의 선수 중 '배문 사단'이 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들 중 나현영이 최우수신인상을, 강순복과 이동규는 우수신인상을 받았다.
배문 사단은 특히 서울팀이 대회 최종일인 1일 경기도를 종합기록 35초차로 따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역전 드라마는 마지막 8소구간(판문점~임진각 7.2km)에서 펼쳐졌다. 이번 대회 최연소로 참가한 조준행(16ㆍ배문중)이 경기 대표를 49초 차로 누른 것. 서울은 최종 소구간을 남겨두고 경기에 14초차 뒤져 있었다. 하지만 조준행의 불 같은 역전 레이스로 2년 만에 경기도를 3위로 끌어내리고 종합 2위에 뛰어 오른 것이다.
조남홍 감독은 "살얼음판이었다. 설마 했는데 (조)준행이가 뒷심을 발휘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는 실업팀 소속 선수까지 참가를 독려해 충북의 8연패를 저지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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