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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흘러가다 만들어낸 소설… 그게 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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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흘러가다 만들어낸 소설… 그게 내 스타일"

입력
2012.12.0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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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간된 문예지 는 지령 100호를 맞아 최수철 최윤 배수아 등 문예지가 배출, 교류한 대표 작가들의 신작을 대거 실었다. 이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이인성(59)의 단편 '한 낮의 유령'. 2006년 서울대 불문과 교수직을 사직하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가 단편 '돌부림'을 발표한 지 6년 만에 발표한 신작은 '분명히 나쁜 꿈', '악몽여관 407호'에 이은 악몽 4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같은 시기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이인성 작가론'인 가 출간됐다. 김 교수는 이인성의 소설을 프랑스 문학의 시혜를 받은 김현 식의 선험적 지식, 운명적 가난을 소설 밑천으로 삼은 이청준의 체험적 지식 사이에 있는 소설로 읽는다. 김 교수의 180여권 저서 가운데 생존 작가의 작가론이 책으로 발간된 것은 처음이다.

두 편을 들고 지난 29일 명륜동 작업실에서 이씨를 만났다. 이씨는 ''돌부림'에서 멈춘 작가'란 김윤식 교수의 평에 "(돌부림은) 나름대로 극점까지 나갔던 소설로 거기서 어떻게 더 나아가야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없었다"며 "신작은 '돌부림'을 정점에 놓고 앞뒤를 쓴 것이다. 늦게 썼지만 구조적으로 다음 소설집 제일 앞에 배치할 소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승인 김현의 사후 이청준의 영향을 받았다는 김윤식 교수의 평과는 달리 "이청준의 초기작품들은 전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식인 소설에 가깝다. 내 작품이 이청준 소설에 영향을 받았다면 오히려 초기작품들이다"고 말했다.

이인성은 전통 소설의 문법, 즉 기승전결의 인과론적 줄거리와 문장 체계, 사건의 시공간을 해체함으로써 1980년대 전위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나'와 '그'의 혼용, 불확정적인 시공간의 설정, 현실과 비현실, 또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방식, 의식과 무의식의 혼재 등이 뭉뚱그려져 있는 이씨의 소설은 실험적인 문체를 통해 독자에게 삶과 세계의 의미를 묻는다. 신작 역시 이 연장선에 있다. 소설이 써지지 않아 강박증에 시달리는 소설가가 주인공으로, 그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도시 이곳 저곳에서 출몰하는 유령 같은 사내를 목격하는 것이 줄거리다. 이씨는 "(내 소설은) 글이 흘러가다가 만들어낸 것들이다. 말이 말을 불러오고, 상상이 상상을 불러온다. 그런 것들이 끌어와서 쓰고, 재구성하고 고치다보면 새로운 요소가 또 들어온다. 그것들과 비교해 앞의 내용을 다시 구성한다. 내 스타일은 그런 식의 글쓰기이다"고 말했다.

"저는 소설이 이야기의 조립이 아니라, 이야기를 글로 쓰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소설이 단지 이야기의 조립이라면 소설을 볼 필요가 없죠. 이야기만 원한다면 영화를 봐도 되겠죠. 이야기가 아닌 다른 요소로 인해 소설은 비로소 소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쓴 악몽 4부작을 묶어 내년 초 14년 만에 소설집(가제)을 낼 계획이다. 이씨는 "90년대 이후에 욕망이 뭔지, 세상과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의 것을 파고들고 싶었다. 악몽은 그 욕망의 끝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작의 작가는 단편소설 한편을 쓰는데 길게는 몇 년이 걸리고, 집필 후에도 숱하게 작품을 뒤엎고, 없앤다. 이번 '한낮의 유령' 집필에만 2년이 걸렸다. 발표 후 다시 책으로 묶을 중단편 소설의 순서를 짜고 원고를 다듬는데 수개월이 걸린다. 그는 한 작가가 때로 1년에 두세 권 씩 소설집을 내는 작금의 문단 풍토에 대해 "젊은 작가들 중에도 좋은 작가가 많지만 가끔 너무 쉽게 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너무나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떻게 보면 오만할 수도 있는데, 나는 나만 쓸 수 있는 몇 개만 쓰면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조은민 인턴기자 (숙명여대 국어국문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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