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1985'를 보았다. 고 김근태 의원이 남영동에서 당한 22일간의 고문을 담은 영화다. 어둡고 무거운 영화인데도 '재미'가 있어서 놀랐다. 고문실에서 고문하고 고문당하는 것이 전부인데도 드라마는 곳곳에 숨어 있었고 때로는 코믹하기까지 했다.
끔찍한 건 고문 장면이 아니라 바로 그 코믹함이었다. 영화 속에는 직급이 낮은 몇 명의 수사관이 나온다. 연행된 주인공을 개처럼 패고 밟고 물속에 처박는다. 이 불한당들은 천성적으로 야비한 인간말종들인 걸까. 그랬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그들도 가족에 대해 애틋하고 야구경기에 일희일비한다. 연일 밤샘근무로 피곤에 찌든 채 쪽잠을 잔다. 그런 장면들이, 우스우면서도 무서웠다.
악의 평범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하필 고문실을 직장으로 두지 않았더라면 이들도 그저 소박한 우리의 이웃이었을 것이다. 뒤집어 본다면? 열심히 사는 평범한 소시민인 우리 역시 비인간성을 강요하는 구조 속에서는 괴물의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괴물로 돌변하는 일 없이 평범함을 평범함으로 지켜낼 수 있을까. 고 김근태 의원은 한때 내가 살던 곳의 지역구 국회의원이었고, 나는 지하철역에서 그와 마주친 적이 있다. 키가 작달막했던 그는 민주화운동의 대부이기에 앞서 동네 아저씨처럼 보였다. 나의 이웃이던 고문피해자. 하지만 고문가해자들 역시 나의 이웃이라는 게, 지금은 좀더 괴롭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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