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아비규환. 지은숙(62) 광운대 수학과 교수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죽음의 현장'은 이랬다. 9년 전 충북 청주의 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였다. 눈 앞에는 30년을 가족으로 함께 산 여든의 시어머니가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었다. 시어머니의 가는 숨을 이어주는 건 산소호흡기였다. 그것 말고도 키 150㎝인 시어머니의 작은 몸을 10개도 넘는 주사 바늘과 호스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중환자실엔 시어머니 말고도 30여명의 환자들이 그렇게 사투 중이었다.
"시어머니의 얼굴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져서 시커멓게 변해있었죠. 그때 경험한 중환자실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어요."
30년 간 당뇨와 그로 인한 합병증을 앓다 쓰러진 시어머니는 그렇게 두 달 반을 중환자실에 무의식 상태로 누워있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은 의료진에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겠다고 간청했고, 서울 집에서 산소호흡기를 떼는 것으로 이별했다.
이 경험은 지 교수가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지 교수 역시 1999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죽음에 한 발짝 다가가 본 적이 있는 터였다. 지금은 완치에 가까운 상태지만, 10년 간 세 번에 걸친 수술과 반복되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면서 미리 유서까지 써뒀다.
지 교수는 "투병을 하면서 만약에 올지도 모를 죽음 직전의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호흡이나 심장박동을 복원시키려는 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시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그런 생각을 굳혔다"고 말했다.
남편 곽병선(71) 전 한국교육개발원장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상의 끝에 한 민간단체를 두드려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사전(事前)의료의향서'를 써두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지 교수 부부는 "아이들에게도 회생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연명치료를 계속 하는 게 자식의 도리는 아니라는 점을 설득했다"며 "수명이 다해 갈 때가 됐는데 억지로 연명하는 건 되레 자연의 순리에 어긋날뿐더러 생명에 대한 존엄도 아니다"고 말했다.
사전의료의향서는 회복 불능 상태에 놓일 경우 본인이 받을 치료의 범위를 미리 정해놓는 문서로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것을 서약하는 일종의 선언이다. 국내에선 연세대 의대 일부 교수들과 골든에이지포럼, 각당복지재단 등 민간이 지난해 자발적으로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을 꾸려 종교단체와 노인대학을 돌면서 강연을 통해 취지를 알리고 참여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 모임 사무총장인 이일학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서의 연명치료는 환자 본인과 가족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고 환자 본인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준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에 관한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 모임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은 갈수록 늘고 있다. 이 모임을 통해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이는 지난해 2,500여명이더니 올해에는 6,500명이나 된다. 2.5배 이상 급증했다. 이 교수는 "의학의 발달로 죽음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삶의 질뿐 아니라 죽음의 질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결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전의료의향서는 아직 법적인 효력이 없다. 이 모임에 의향서의 사본을 제출하면 일종의 '확인증'을 주지만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담당의사는 이를 참고만 할 수 있을 뿐 이행해야 하는 건 아니다. 외국에선 미국이 1994년 이른바 '존엄사법'을 만들어 사전의료의향서를 표준화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의학적으로는 뇌사상태에서 취해지는 추가적인 의료조치는 모두 연명치료라고 봐야 한다"며 "연명치료 중단의 기준을 만들기 위한 의학적인 연구와 사회적인 공론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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