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를 떼니까 장모님 표정이 편안해졌어요.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가족들의 선택은 같을 겁니다."
심치성(53)씨는 지금도 장모인 고 김모(당시 77세)씨가 인공호흡기를 떼던 날이 눈에 선하다. 김씨는 호흡기를 떼면 2~3시간 내 사망할 것이라던 의료진들 말과 달리, 호흡기를 떼고도 201일을 더 살다 세상을 떴다. 지난 2009년 '국내 첫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이다. 29일 만난 심씨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환영한다"면서도 "악용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세심한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가족들은 단지 장모님이 자연스럽게 계시기를 원했던 것뿐이어서 호흡기를 떼고도 영양 주입이나 나머지 간호는 계속했거든요. 그런데 자꾸 장모님 죽음이 존엄사로 회자되면 가족들이 마치 장모님 생명을 포기했던 것처럼 비춰질까 부담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김 할머니는 2008년 2월 연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 조직 검사를 받다 과다출혈로 뇌사에 빠졌다.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필요 없다고 여겨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고 요구했지만 병원 측은 지난 2004년 '보라매병원 사건'을 들며 거절했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환자 가족들의 요청으로 인공호흡기를 떼 준 의사가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건. 결국 가족들은 법원에'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에 대한 소송'을 냈고, 이듬해인 2009년 5월 대법원은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당시 가족들이 소송까지 가게 된 배경에 대해 "장모님의 결정이었다"고 했다. 김 할머니가 5년 전 같은 병원에서 남편을 떠나 보낼 때, 해외 출장 중이던 아들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수 있도록 병원에서 연명치료를 제안했지만 "의식도 없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냐. 천국 가면 다 만난다"며 거절했던 김 할머니의 생전 의사를 가족들이 존중한 것이다. 당시 김 할머니가 병원 측의 연명치료를 거부한 기록은 이후 재판에 제출돼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당사자의 의사를 증명하는 증거 자료가 됐다.
심씨는 정부의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 소식에, "우리 판례가 악용되지 않도록 법제화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2년 넘게 주차비만 500만원을 쏟아 부으며 중환자실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병원비로 고민하지 않는 환자 가족들이 없더라"며 "혹시라도 본인 의사가 아닌 경제적 문제로 연명치료를 그만두도록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씨 가족은 현재 병원을 상대로 당시 김 할머니의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 중이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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