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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위협 이란 여성 "나는 솔탄 아닌 솔타니"… 사진·동영상 둔갑에 "돌려줘, 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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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위협 이란 여성 "나는 솔탄 아닌 솔타니"… 사진·동영상 둔갑에 "돌려줘, 내 삶"

입력
2012.11.3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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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제 인생은 모든 게 변했어요. 평범하던 일상이 테러 위협에 시달리게 됐으니까요. 방송사 실수로 인생이 송두리째 엉킨 상황에 화가 납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실망도 했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고 싸울 거예요."

이란에서 대학 강사로 일하던 네다 솔타니(35)는 2009년 6월 21일 출근해서 이메일을 확인하고는 대경실색했다.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하루에만 400개의 친구요청이 등록된 것이다.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던 그는 그러나 잠시 뒤 친구의 전화를 받고 뭔가 크게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네 사진이 TV에 도배됐어.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CNN방송에도 말이야."

당시 이란은 2009년 6월 12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부정 논란으로 연일 시위가 들끓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4년 연임이 확정된 선거 결과에 야권은 승복하지 않았고, 대학생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 도중 당시 26세 여대생인 네다 아그하 솔탄이 대선 8일 뒤인 20일 시위 진압대 총탄에 맞아 숨졌다. 솔탄은 곧바로 이란 저항운동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한 블로거가 솔타니의 페이스북 사진을 사망한 솔탄의 사진으로 오해해 인터넷에 올리면서 솔타니의 평범한 삶은 산산조각 났다. 미국의 CNN방송과 폭스뉴스, 이란 파르시 채널 등은 앞다퉈 솔타니를 솔탄으로 보도했다. 솔타니가 손 쓸 새도 없이 그의 사진은 삽시간에 퍼졌다. 시위대의 플래카드와 티셔츠는 물론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진 솔탄의 시신 모습이 담긴 동영상에도 그의 사진이 실렸다.

그러나 솔타니의 인생에는 누구 하나 아랑곳 하지 않았다. 솔탄의 가족조차 정부의 압박에 쉽게 나서주지 않았다. 이란 정부는 솔탄의 죽음을 무마하기 위해 솔타니에게 오히려 "솔탄인 척 국영 TV에 모습을 드러내라"고 종용했다. 솔타니가 거부하자 정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간첩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이란 국민 중 친정부 세력은 솔타니에게 간첩이라며 테러위협을 가했다. 반정부 세력은 솔타니가 솔탄의 죽음을 덮으려는 정부와 한통속이라고 오해하며 솔타니를 정부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했다. 테러위협은 솔타니의 가족에게까지 이어졌다. 위협을 느낀 지인들은 하나 둘씩 그를 떠났다.

그는 결국 망명을 택했다. 2009년 7월 말 테헤란 공항 보안 관계자에게 1만4,000달러(약 1,500만원)의 뇌물을 주고 터키로 떠났다. 이어 그리스를 거쳐 독일로 갔다. 솔타니의 사정을 들은 독일 정부는 그에게 난민캠프를 제공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솔타니는 미국의 대학에서 자서전 을 집필 중이다.

솔타니는 BBC방송 인터뷰에서 "망명 전 일일이 내 사진을 잘못 사용한 블로거들과 방송사에 이메일 등을 보내 정정을 요구했지만 일부 블로거들만 정정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사진을 계속 사용한 CNN방송 등의 행동은 절대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자신의 사진이 솔탄으로 둔갑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온라인에 남겨진 자신의 정보에 대해 통제와 삭제가 가능토록 하는 '잊혀질 권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이태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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