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질의 낭독회 오가와 요코 지음ㆍ권영주 옮김현대문학 발행ㆍ224면ㆍ1,만2,000원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국내 알려진 오가와 요코는 일본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다. 1991년 '임신 캘린더'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고, 2003년 요미우리 문학상, 2006년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등 주요문학상을 줄줄이 수상하며 주요 작가로 자리잡았다. '약지의 표본' '침묵의 박물관' '호텔 아이리스'가 프랑스에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돼 국내에 꽤 잘 알려졌다. 수학, 체스 기보 등 독특한 소재로 시작하는 오가와의 소설은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을 짜임새 있는 문체로 보여준다.
신작 또한 이런 독자의 기대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에 작가가 들고 온 이야기는 인질의 낭독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너무 복잡해서 한 번 들어서는 도저히 발음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름의 마을'에서 인질극이 벌어진다. 인질은 W여행사가 기획한 단체관광 참가자 7명과 가이드. 100여 일 후, 8명의 인질은 범인이 설치해놓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해 전원 사망한다. 2년 후 인질사건은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또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범인 집단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도청했던 녹음테이프가 공개된 것.
테이프에 담건 것은 뜻밖에도 인질들이 낭독한 각자 인생의 한 순간이다. 53세 인테리어 코디네이터, 61세 제과전문가, 소설을 연재 중인 42세 작가 등 인질들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을 적어 사람들 앞에 담담하게 낭독한다. 매일 밤 한 사람씩 발표하는 8편의 짧은 사연이 옴니버스처럼 묶인 장편소설이다.
'어떤 것이든 좋으니 추억담 한 편을 써서 돌아가며 낭독한다. (…) 자기 안에 간직한 과거, 미래가 어떻게 되든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과거다. 그것을 살며시 꺼내 손바닥으로 보듬어 덥히고 말(言)의 배에 태운다. 그 배가 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범인들조차 그런 자신들을 가로막지는 못하리라.'(13쪽)
인질들의 낭독은 절망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따스하고 희망적인 뉘앙스를 준다. 죽은 남편이 남긴 모형 비행기를 날리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던 이야기, 불량품 비스킷으로 다과회를 열며 사회 초년병시절을 견뎠던 이야기 등 저마다 가슴 속에 품었던 사연을 타인 앞에 고백하며, 인질들은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 받기 때문이다. 작가는 각각의 미소한 추억담을 투명하고 섬세한 문체로 담아낸다. 일생에서 섬광처럼 빛난 순간을 포착한 소설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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