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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일본은 아시아의 영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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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일본은 아시아의 영국인가

입력
2012.11.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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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일본은 영국과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대비되는 나라다. 모두 군주제 섬나라이며, 인내심과 검소한 국민성은 평판이 나 있다. 대중문화의 전설 비틀즈를 제외하면, 미술·음악·오페라 등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것 같지도 않다. 이방인에 친절하나 웬만해선 속내를 내비치거나 집에 초대하지 않는다. 하이드파크와 우에노 공원 등 인공 공원이나 정원과 호수를 즐기는 차분한 심성도 흡사하다. 자동차는 모두 좌측통행이다. 국왕에 대한 충성심은 양국 국가인 '신이여 국왕(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King(Queen)나 '기미가요'만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국왕과 왕실은 양국 국민통합의 구심점이다.

양국의 역사·문화는 그러나 여러모로 다르다. 영국 국왕은 대영제국의 전성기 시절에도 황제를 칭하거나, 군국·제국주의로 치닫지 않았다. 극단보다 형평과 실용을 중시하고, 국민의 동의와 합의를 중시하는 원칙을 확립했다. 절제와 양보의 미덕 속에 국왕·국민 간 대화·타협으로 의회주권 전통을 확립, 근대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진화했다. 인권과 인도주의, 다양성이 존중된다. 토크빌은 영국 방문 후 '독재의 나라로부터 독재자의 변덕이 아니라 가혹하지만 법의 지배를 받는 나라로 탈출한' 기분이라는 말을 남겼다. 늘 푸른 잔디·정원과 전원은 영국의 자산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영국은 노르망디 공의 영국 정복과 백년전쟁 등을 거치면서 대륙에 대한 야심을 접고 나폴레옹, 히틀러의 팽창·전체주의 야심을 저지하는 자유의 보루, 세력균형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했다. 지리적 고립은 뉴턴과 제임스 와트, 다윈, 문호 셰익스피어 등 지적 유산과 전통으로 극복했다. 경험론과 귀납법은 영국의 철학적·과학적 기여이다. 레이더를 발명하고, 컴퓨터의 원리를 창안했다. 법체계도 사뭇 다르다. 원조 영미법국가로서 영국법은 제정법에 우선하는 판례법(보통법)이라는 독특한 사법제도를 인류에 선사했다.

혹자는 침략보다 식민지배야말로 진정한 '악'이라고 주장한다.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영국은 아편전쟁을 통해 홍콩을 할양받고 지배하였다. 그 목적은 영토 야욕이 아니라 경제통상 이익, 즉 무역거점 확보와 시장지배에 있었다. 19세기 아시아의 산업생산기지로 발돋움한 일본의 지도층은 탈아입구(脫亞入歐) 선민·우월의식과 근대화의 이름으로 '미개한' 인접국을 무력 정복·병합한 뒤, 토지·물자·자원 등 경제적 수탈과 징병·징용은 물론, 민족 문화·정체성 말살·동화정책을 병행했다. 또 관동대지진 시 한인학살, 남경대학살 같은 만행도 저질렀다.

영국은 식민지배의 원죄는 있어도 영토문제에 대체로 관대했다는 평가이다(1783년 미국과의 파리조약, 위키피디아).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고문, 포로학대나 생체실험 같은 광범위한 인권유린은 없었다. 민족·인종 차별은 몰라도 민간인 집단학살은 금시초문이다. 식민지에서 징병은 있었어도 위안부 강제동원은 없었다. 전통 '앗싸리' 문화, 무사도는 빈말인가 옛말이 되었는가? 과거 영국의 식민지 국가들은 독립 후 영연방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접 3국 모두와 영토문제를 가진 나라는 유례가 드물다.

한 마디로 양국은 의식구조·가치관 등 정신유산에 있어 판이하다. 일본 문화는 획일적·수직적·집단주의적이며(가미카제), 외부에 폐쇄적·차별적이다. 명치유신 이후 서양 과학기술은 적극 수입하되, 자유와 평등, 인권과 개성 등 정신적 가치는 금수품이었다. 다양성은 사치품에 속했다. 겉은 탈근대 후기산업사회이지만, 내면은 전근대적 이중적인 과거회귀적 사고가 배회한다. 과거사도 과거사지만 미래가 더 문제다. '내선일체'로 한 세기 이상 일본에 거주한 재일한국인에 대한 법적·사회적 차별은 여전하지 않은가.

박현진 전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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