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박스'(EBS 밤 11시)는 나치가 지배했던 유럽의 암흑기를 소재로 쓰고 있지만 시대적 비극보다는 인간의 양면성을 조명한 작품이다. 오랜 세월 가정에 충실한 삶을 유지하며 주위의 신뢰와 애정을 한 몸에 받게 된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흉악한 전범으로 기소된다는 설정부터 주제는 확연히 드러난다. 추악한 괴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우리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제시카 랭의 연기가 돋보인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나는 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변호사 앤을 세련되고 능숙하게 그려냈다. 그 덕에 과도한 멜로드라마가 됐을 수도 있었을 내용에 절제미를 부여한다. 또한 현악기의 선율과 건조한 듯하면서도 애달픈 헝가리 음악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준다. 끔찍한 과거를 감추고 수십 년간 존경 받을만한 인물로 살아온 마이크 역할을 맡은 독일 출신 배우 아민 뮐러 스탈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1989년작.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원제 'Music Box'. 15세 이상.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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