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의 핵심 참모들부터 일선 지검 부장검사들까지 검찰총장실을 찾아가 용퇴를 요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한상대(53) 총장이 30일 결국 자리를 떠났다.
한 총장이 물러난 표면적인 이유는 수뢰 검사, 성추문 검사 사건에 책임을 진다는 것.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전대미문의 검찰 위기를 개혁안 발표로 돌파하려던 한 총장과, 대검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던 최재경 중수부장을 비롯한 소위 '특수통' 검사들의 힘겨루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한 총장은 전날인 29일 오후까지도 개혁안을 발표한 뒤 신임을 묻는 형식으로 사표를 내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알려진 후 '물러나는 총장이 무슨 개혁안 발표냐'는 일선 검사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결국 무조건 사퇴하기로 마음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안을 내놓더라도 본인이 사퇴하는 이상 개혁안 추진 동력이 없어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점, 조직의 총수가 사퇴하면서 개혁안을 내놓을 명분이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한 셈이다.
당초 한 총장이 구상했던 검찰개혁안의 핵심은 특수수사의 본산인 대검 중수부 폐지와 검찰의 구조적 비리 차단을 위한 상설특검제 도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수부를 폐지하는 대신 서울중앙지검 산하에 '부패범죄특별수사본부'를 신설, 형사소송법상 관할구역 제한을 풀어 전국 단위로 부패범죄를 수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은 한 총장이 자신의 핵심 참모인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착수를 지시한 이후 극도로 악화된 내부 여론 때문에 결국 불발됐다.
한 총장은 재임 중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 등에 대한 잇단 부실수사 논란으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최근에는 SK 최태원 회장 구형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LIG그룹 회장 일가의 사법처리 수위 결정에도 관여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이처럼 한 총장이 개별 사건에 개입하며 일선 수사진의 의견을 무시하는 사례가 적지않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 내부에서는 불만이 쌓여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검찰조직 내 신망이 비교적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해 무리하게 감찰 카드를 꺼내드는 바람에, 후배 검사들의 집단 반발이라는 사상 초유의 검찰 내분을 자초했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공통된 분석이다.
김광준 검사 수뢰 사건, 성추문 검사 사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오판을 한 것도 한 총장의 낙마 요인으로 꼽힌다. 김광준 검사 사건이 불거졌을 때 '경찰 수사 가로채기' 논란을 우려한 중수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임검사를 지명한 것, 성추문 검사 사건 파장을 서둘러 잠재우려고 무리하게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것은 한 총장의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한 특수부 검사는 "한 총장이 물러날 시기를 놓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악수만 거듭하다가 검찰조직 전체를 최악의 위기로 몰고 갔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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