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동물은 몰라도 사람의 눈과 귀는 참 신통하다. 여러 번 접한 시각ㆍ소리 정보에 '친숙성 가점(加點)'을 주어 거부감을 줄인다. 남녀의 첫 대면에서 별 감흥이 없던 상대도 자꾸 만나다 보면 점점 예쁘거나 멋지게 느껴진다. 처음 혐오증을 부를 정도의 얼굴에서도 나름대로의 매력을 찾게 된다. 연애와 결혼을 떠받치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한 호감을 빚어내어 사회관계 유지에 기여하니 신통방통이다. 소리도 같다. 처음 형편 없던 노래도 자꾸 들으면 좋아진다.
■뒤집으면 눈과 귀처럼 멍청한 것도 드물다. '제 눈에 콩깍지'라는 말처럼 객관적 실체와 동떨어진 주관적 해석으로 치달으니 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눈과 귀가 포착한 시각ㆍ소리 정보를 해석하고 보관하는 신경중추가 멍청하다. 의심스러우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찍기 직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과 현상된 사진을 비교하면 너무 다르다. 녹음기로 들은 자신의 목소리도 낯설기 짝이 없다. 남이 보고 듣는 것은 카메라나 녹음기가 잡은 모습이나 목소리에 가깝다.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골라 가지려고 하는 '선택적 유지'는 언뜻 위의 '친숙성 가점'과는 정반대인 듯하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신념과 태도가 새로운 정보 수용단계에서 '선택적 유지'경향을 보이는 것과 달리 '친숙성 가점'은 신념 형성 이전인 감각단계에서 나타난다. 합리적 광고주라면 어차피 수용 확률이 낮은 사실정보보다는 반복적 전달로 얼마든지 호감을 일깨울 수 있는 감각정보 전달에 치중하게 마련이다.
■정치홍보도 다르지 않다. 선거 때마다 정책선거를 외치지만 삶의 정향(定向)이 굳은 유권자의 마음을 새로 끌어들이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유권자의 눈과 귀를 두드려 마마자국이 보조개로 보이게 할 정도의 반복적 이미지 광고가 훨씬 효과가 크다. 인지도란 접촉ㆍ노출 빈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특정 후보의 구호와 바로 겹치거나 연상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면 공익광고도 잠시 제한할 필요가 있다. 횟수가 쌓이면 미운 털도 뽑힌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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