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미국 역사상 가장 애국적인 시대로 간주한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저 유명한 메모리얼 데이 추념 문구와 함께, 참전세대를 '위대한 세대'라고 떠받들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 애국적인 시대에도 전시동원에 저항하며 놀랍도록 반항적인 문화를 꽃피운 이들이 있다는 사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약 1,000만 명의 미국인 가운데 약 3분의 2는 사실상 강제 징집 군인이었다는 사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이 있고도 자원 입대자가 턱없이 부족하자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발동, 강제 징집을 시작했다. 전시인력관리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매달 약 20만 명의 청년들이 전선으로 끌려갔다.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처럼 요령으로 징집을 면한 이들도 적지 않은 걸로 봐서, 공권력의 장악력이 그리 강력했을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제 아들 군대 보낸 이웃들의 눈총을 견디는 게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징집을 거부하거나 대상자 등록을 회피하는 이들은 징역을 살거나 강제노역을 해야 했다.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이기적이고, 비애국적이고, 반역적이기까지 한' 파업 이야기도 소개하면서, 덧붙여 "제2차 세계대전이 자유를 위한 전쟁이었다면, 그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며 두 가지 사실을 보탠다. 하나는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비교적 자유롭게 발현시킬 수 있는 해방공간을 제공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약(마리화나)의 확산이었다. 당시 정부는 군수물자 조달 차원에서 당시 불법이던 삼(hemp) 재배를 권장하며 농기계를 헐값으로 공급했고, 재배 농가의 자식들에게 군복무를 면제해줬다.
하워드 진이 의 후기에 썼듯 "해석과 무관한 순수한 사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실의 이면에는 어떤 판단, 즉 '이 사실이 중요하며 생략된 건 중요하지 않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다는 것이다. 콜럼버스의 인디언 학살사로 시작되는 진의 저 장중한 저서가 미국 위인들의 공식 역사에 맞서 노동 인권 여권 평화 운동의 역사, 민중의 역사를 기록했다면, 이 책의 저자가 찾아간 자리는 좀 더 아래다. 술꾼과 게으름뱅이, 매춘부, 해적들, 뜻밖에 자유롭던 노예들의 일상과 해방 노예들이 겪은 억압, 마피아, 불량 청소년, 동성애자, 히피….
예를 든다면, '지옥의 발명품'이던 콘돔이 성 혁명의 소품으로, '주홍빛 수치'였던 립스틱이 20세기의 상징적 제스처로 등극하기까지, 그리고 지금처럼 일상화하기까지, 주류 사회의 유ㆍ무형의 조롱과 억압을 견디고 맞섰던 매춘부들의 '파렴치한' 이야기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이중적 면모와 함께, 그의 비폭력주의 대열에 동참하기를 거부한 다수 흑인들의 폭력이 흑백분리정책 분쇄에 어떻게 실질적으로 기여했는지도 이 책은 풍부한 사료적 근거와 함께 알려준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기존 역사가 배제해 온 사실들을 통해 '불량한' 미국인들이 "어떻게 사회적 규범 밖에서 세상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화시켰고, 새로운 쾌락을 창안했으며, 우리의 자유를 확대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해명처럼, 그것이 불한당들을 대체영웅으로 옹립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다만 교과서들이 일부에게 부여해 온 과도한 영광을 덜어 배척당해온 이들에게도 온당한 몫을 나눠주자는 취지다. 취지나 의미를 떠나 일단 흥미롭고, 논쟁적인 내용들도 적지 않다.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