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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민족이란, 민중이란 과연 무엇인가 흑백논리 껍질을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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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민족이란, 민중이란 과연 무엇인가 흑백논리 껍질을 깨다

입력
2012.11.3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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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읽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이 나지 않아 책을 펴보니 군데군데 밑줄이 쳐져 있다. '과도하게 성장한 국가의 권력기구가 위로부터 파시즘을 강제하는 정치적 기제라면, 확대된 가족주의 혹은 연고주의는 밑으로부터 파시즘을 담보하는 견고한 문화적 기제이다', '사실상 지배와 억압의 대상이자 저항과 투쟁의 주체라는, 민중을 구성하는 이중성은 선명하게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꽤나 열심히 읽어 내려간 듯 메모와 색연필로 표시해 놓은 흔적도 남아있다. 출신학교의 언론고시반 소인이 찍혀 있는 것을 보니 2003년 입사 이전에 책을 지녔을 터. 출간이 2001년 6월이었으니 기자시험을 준비하던 대학생 신분일 때 읽은 것이 틀림 없다. 지식도 부족하고 판단력도 미흡했던 시절, 이 책은 민족이란 질식할 것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해 어느 정도 교통정리를 해 준 교과서가 됐던 것 같다.

선명한 이분법의 종말과 함께 찾아온 혼란 와중에 적절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은 다시 보아도 촌철살인이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논쟁은 여전하지만 책이 나온 10여 년 전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건국 50년 만의 첫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 한창 이념에 대한 건전한 논의가 활발하던 때였다. 눌려 있던 좌파 진영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다시 흑백 논리가 등장할 때 이념이라는 그 단단한 껍질 밑에 있는 실체를 직시하라는 외침은 언뜻 다른 의도로 비춰지기도 했을 터. 민감성이 큰 민족 담론이라지만, 다시 펴보니 엉뚱한 쪽으로 논의가 튀는 것을 염려해 성찰을 뜻할 뿐 다른 의미가 아니라고 강조한 부분이 여러군데라는 게 눈에 뜨인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의 기고문과 에세이 등을 묶어놓은 이 책은 주로 민족주의와 파시즘에 천착한다. 머리글에 적어 놓았듯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에 여전히 구체제의 인식을 벋어나지 못한 채, 흑백 논리에 따른 답만을 주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예컨대, '민중들이 독재의 희생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몸을 던져 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투쟁해 왔다는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이다' 같은 주장을 하며 그는 자신이 확신했던 이성의 잣대가 실상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였다고 고백한다. 사회 역사적인 배경을 곁들고, 각주를 꼼꼼히 단 것은 물론 학자다운 접근임에도 글이 황량하지 않다.

우리 시대 대표적 지식인의 사상을 오롯이 담은 출판사 삼인의 '동시대인 총서' 중 하나로, 2000년 5월 김우창 교수의 를 시작으로 김종철 리영희 강만길 등 벼린 펜을 지닌 학자들이 리스트에 자리한다. 당시 계간지 '당대비평'의 주간이던 문부식의 주도 하에 '세계의 우둔함, 그리고 안락이 감춘 삶의 비극을 드러내는 준열한 비평정신, 그것이 이룬 지성의 광맥을 찾았던' 기획의도는 그러나 기백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2006년 7월 박이문 선생을 끝으로 중단됐다. 출판사에 문의한 결과 이 시리즈 중 가장 많이 나간 단행본이 6,000부(리영희 선생의 ) 정도란다. 나머지는 1,000부에서 평균 3,000부 정도에 그쳤으니 요즘 인문서 판매량에 비하면 적게 팔린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12월 대선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요즘 삼인의 '동시대인 총서'는 다시 읽어도 꽤나 유효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필자 선정에 엄정했으며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고민하는 지성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끊긴 광맥이 다시 이어지기를 희망하며 시리즈의 다른 책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갈무리한다. (김우창), (김종철), (리영희), (강만길), (김동춘), (권혁범), (김진호), (신형기), (박이문).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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