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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멀뚱하고… 때론 왁자하고… 자잘한 삶의 드라마가 24시간 타고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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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멀뚱하고… 때론 왁자하고… 자잘한 삶의 드라마가 24시간 타고 내리다

입력
2012.11.3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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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 토론·인생 상담·데이트 밀어… 뒤탈없는 익명의 배설공간이자 협잡이 들통나기도 하는 무대중노동과 쥐꼬리 수입 기사들 생계의 절박함에 울상짓고승차거부와 난폭운전 승객들 짜증넘어 앙심까지 품게

찬물 들이켜다 시린 통증에 소스라친 뒤에야 치아의 존재를 인식하듯, 익숙한 것들의 가치는 대개 실재의 기능보다 부재의 불편을 통해 환기된다. '이빨이 또 말썽이네….' 존재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부정적인 맥락 안에 놓일 때가 잦다. 눈이라도 부릅뜨고 팔 걷어 부치기 전에는 온당한 대접을 기대하기 힘든 사회. 세상이 잘못 돼서 부당한 건지, 부당함 위에서만 세상이 서는 건지 아리송할 때도 있지만, 어쨌건 그건 인식의 게으름이다. 익숙함이라 쓰고 타성(惰性)이라 읽어야 할 그 게으름은 유적(類的) 존재들의 본능적 학습 능력일지 모른다. 좋든 싫든, 상호의존적 관계의 주체들이 그나마 늘 삿대질하며 생색내지 않으면서 공존하게 하는 게 또 그 타성의 힘이기 때문이다. 물론 타성의 망각이 아니라 존중의 기억에 기대는 바가 클수록 공동체의 기품은 고양된다.

춥고 시린 밤, 발 동동 구르며 택시를 기다리다 보면, 우리에게 택시가 얼마나 간절한 존재인지 (솔직히 말하자면) 야속하고 짜증스런 존재인지 절감하게 된다. 지하철도 시내버스도 끊긴 시각, 몸은 파김친데 눈발까지 날리고…. 서너 차례 승차거부라도 당한 뒤라면, 택시(기사)에 대한 앙심 까지 품게도 된다. 왜? 관념 속에서 이 세상은 항상 유기적인 공간이고, 모든 주체는 당연히 유기적으로 기능해야 정상이니까. 눈앞의 불편 앞에서 우리는 이 사회가 관념처럼 늘 유기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거나 망각한다. 어긋난 톱니바퀴를 흘겨보며 걷어차기 바빠 윤활유의 점성을 점검하고 차축 배열을 살피는 데는 게으른 것이다. 그것도 역시 타성이다.

여론의 안테나로 통하는 택시가 바로 그 여론의 도마 위에 얹혀 있다. 국회가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에 포함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대중교통육성 이용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시내버스 사업주들이 운행중단 카드로 발끈하더니 버스 노조도, 법안의 본회의 통과 여부에 따라, 파업 등 집단행동에 나설 태세다. 교통 전문가들은, 택시업계의 경영난과 기사들의 박탈감에 공감은 하면서도, 법안 개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모양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 탓도 있겠지만, 여야가 '표'를 의식해 벌인 '꼼수'라는 설까지 가세하면서 인터넷 토론방마다 감정 섞인 논쟁들이 한창이다. 역시, 요긴하게 소용돼온 당연한 일상보다 부재의 순간에 겪은 불편의 기억들, 앙심의 앙금 탓일까. 역성드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반박하는 입장에 좀 밀리는 인상이다.

취재 중 만난 몇몇 기사들의 말에 따르면, 택시는 하루 평균(12시간 기준) 250km를 달리면서 20명 안팎의 승객을 태운다. 전국 택시가 약 25만 5,000대. 쉬는 차를 감안하더라도 24시간 동안 1,000만 명 이상(민주택시노조 추산 1,100만 명) 이상이 택시를 이용하는 셈이다.

한 평도 안 되는 택시 공간은 사회 현안에 대한 토론 광장도 되고 인생 상담이 오가는 밀실도 된다. 달뜬 연인들의 데이트 공간도 되고, 어쩌다 이별의 공간이 될 때도 있다. 여론이나 소문, 유행, 업종별 경기동향 등등이 모였다가 전파되는 중간 집하장같은 그 공간이 또 어떤 취객에게는 세상에 대놓고 못할 말들을 쏟아내도 뒤탈 없는 익명의 감정적 배설 공간도 되고, 또 최근 재수 없이(?) 뒤탈을 겪은 한 관료의 경우처럼, 협잡이 들통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승객들의 자잘한 즉흥 리얼 드라마가 이어지는 그 공간이 기사에게는 작업장(개인택시라면 사업장)이다. 그들은 사납금과 교대시간에 겹으로 쫓겨 오줌 참고 끼니 거르면서 병을 얻기도 하고, 한끗 차이로 장거리 대박 손님 놓칠지 모른다는 조바심에 신호위반 딱지를 끊기기도 한다. 바쁜 시간에 차가 퍼져버려 하루를 아예 공치기도 하고, 사고를 내는 바람에 목돈 박아 넣어야 하는 날도 있고, 모진 승객 만나 봉변을 당하는 날도 있다.

말인심 팁인심 후한 손님 덕에 새삼 살맛 나는 날도 있다. 택시 기사치고 기록적인 벌이의 기록 한두 개쯤 안 가진 이들은 드물다. '오늘'만 같으면 금세 개인택시 면허 따고, 아파트 대출금도 단박에 갚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 딱히 나은 대안이 없기도 하지만, 그 희망 때문에 핸들을 못 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저 모퉁이 돌면 장거리 손님이 서있을 것 같고, 다음 모퉁이 돌면 그럴 것 같거든. 오늘은 공쳤지만 내일은 태우는 손님마다 길 뻥뻥 뚫리는 데로만 가잘 것 같고…." 희망이라 했지만 도박이라 해도 좋을 그 중독성 일상에, 알고 속고 모르고 속으면서 조금씩 지쳐가다 보면 나이는 들어있고, 허리도 발목도 말을 잘 안 들어 싫어도 핸들을 놓게 된다고 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난방 빵빵한 중형 세단의 안락한 좌석 위가 ケ茱層湧?독방 감옥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다양한 승객들의 자잘한 단막극들이 스쳐가는 동안, 택시 기사는 그렇게 자신만의 긴 애증의 장막극을 써내려 간다. 그 사연들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택시 바깥에서, 요즘처럼 어떤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보고 겪은 바에 근거해 또 나름의 관람평을 쓴다. 불친절, 승차거부, 신호위반, 꼬리물기, 끼어들기의 난폭 얌체운전….

지난 27일 새벽4시. 인천의 한 택시 회사 기사 교대시각. 차량 인수를 기다리며 모여 앉은 20여 명의 화제는 당연히 택시 대중교통 인정 여부. 엇갈리는 전망과 함께 버스업계에 대한 성토가 석유난로 불기운만큼 격하다. 띄엄띄엄 섞어 있는 이심전심의 푸념들…. 대부분 가족의 생계와 자녀 교육, 노후 대비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장들이다. 동전가방과 커피 잔을 주섬주섬 챙겨 든 이들이 서둘러 어두운 새벽 속으로 사라지도록 자리를 뜨지 않은 한 사람. 교대차량이 아직 입고되지 않았다고 했다. "시간당 만원 매출이 힘든 날도 흔해요. 하루 12만원을 벌면 가스비 4만원(정부 보조금 약 1만3,000원- 리터당 230원 포함) 쓰고 사납금 7만원 제하고 나면 밥값과 담뱃갑 정도가 남죠." 그의 기본급은 월 60만원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전일 차량 받아 독하게 일해서 월 200만~300만원 버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오래 못 버텨요." 하루 12시간 250㎞의 주행은 간신히 쓰러지지는 않을 강도의 노동이고, 월 150만원 내외의 벌이는 딱 절망하지 않을 만큼의 돈이라고 했다.

차량을 늦게 입고한 기사는 돈(시간당 만원)을 건네며 연신 사과했다. "입고하러 오던 길에 분당 가자는 손님을 만났어요. 왕복 한 시간 남짓 뛰면 6만원이 생기는데 어떡합니까. 저 형님(교대자)은 양반이라 이해해줬지만, 어떤 땐 육두문자에 멱살 잡히는 경우도 있어요."

현행법상 대중교통이란 불특정다수가 이용하며 정해진 노선과 요금에 따라 운행되는 교통수단이다. 대중교통수단이 아닌 택시는 엄격한 기본요금 규제를 받는 대신 연 7,600억원의 유가보조금과 부가가치세 보전을 받는다. 버스 업계가 받는 정부 및 지자체의 재정지원과 혜택(연 1조4,000억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종사자 숫자는 택시업계가 월등히 많다. 택시 기사들의 어려움이 법 탓만은 아니고, 법이 고쳐진다고 획기적으로 나아질 리도 없다. 법안 발의가 단순 정치공학의 수식으로 설명될 수 없듯이, 법 하나로 풀 수 없는 해묵은 문제들- 택시 과잉공급과 수송분담률 감소, 행정편의적 요금규제, 높은 실업률과 노사의 비대칭적 역학관계 등-이 산적해 있다.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법안 자체에 대한 평점과 무관하게, 여론이 직시해야 할 또 하나의 현실- 택시 기사의 처우-이 이렇게나마 환기됐다는 점일 것이다. 좀 더 나아가자면, 누구도 먼저 편들어주지 않고 스스로 세상을 향해 종주먹 들이대지도 못하는 어두운 공간 속 이웃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겠지만.

선임기자 proose@hk.co.kr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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