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 법칙 지배하는 자연계 경쟁이 어떻게 협력으로 바뀌는가수학·생물학 결합해 독보적 접근 박테리아·개미·박쥐 등 사례도 제시직접상호성·간접상호성·공간선택 등 협력의 메커니즘 다섯가지 소개"협력 덕에 만물의 영장 된 인류 지구적 위기 극복 위해 협력해야"
삶이라는 게임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경쟁이다. 남들 돌보며 착하게 살아봤자 손해다, 악착 같이 내 잇속을 차리고 필요하다면 배신도 불사하라, 그래야 살아 남는다는 판단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처세술로는 유용해 보인다. 너무 비관적인가.
정반대의 충고도 있다. "더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그러나 더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협력을 강조하는 이 말은 온난화로 위기에 처한 지구 환경 구하기에 헌신한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수상 수락 연설에 인용한 아프리카 속담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낭만적인 메시지 같은가.
수학자이면서 진화생물학자인 마틴 노왁(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원제'Supercooperators')는 경쟁과 협력이라는 위의 상반되는 충고를 '살기 위해 협력한다'는 결론으로 수렴한다. 저명한 과학기자 로저 하이필드와 함께 쓴 이 책에서 그는 (유전적 다양성을 일으키는) 변이와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합한 개체를 솎아 내는) 선택만 강조해 온 전통적 진화론을 넘어, 진화의 제 3 법칙으로 협력을 제시한다. 유전자에서 세포, 유기체, 언어, 복잡한 사회적 행동에 이르기까지, 40억년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것들은 협력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생존 투쟁의 정글인 자연 세계에도 수많은 협력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가장 원시적 생명체인 박테리아조차 다른 세포에게 질소를 영양소로 공급하기 위해 자살하는 세포를 가졌고 집단으로 먹잇감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서로 협력하고 희생해서 집단을 유지하는 개미와 벌, 공동 서식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번갈아 보초를 서는 미어캣, 굶주린 동료를 위해 제 피를 헌혈하는 흡혈박쥐 등 사례는 많다.
이 책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단지 공동의 목적을 향해 함께 일하는 것을 넘어, 심지어 경쟁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구성원들 사이에 협력이 핵심적임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노왁이 제시하는 증례는 세포 조직에서 일어나는 사건부터 인간의 언어와 도덕, 종교, 민주주의 등 복잡한 사회적 행동까지 망라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분석의 토대가 수학이라는 점이다. 적자생존이라는 무자비한 법칙이 지배하는 자연계에서 어떻게 경쟁이 협력으로 바뀔 수 있느냐는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노왁이 동원한 것은 경쟁의 원리를 설명하는 수학 모형인 게임이론이다. 수학과 생물학을 결합해 진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이러한 접근법은 독보적인 것이다.
동물행동학자들이 자연 상태에서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신경생리학이 인간의 뇌세포에서 타인의 행동뿐 아니라 감정에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거울 뉴런'을 발견하는 동안, 그는 방대한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해석해 내는 컴퓨터 작업을 통해 협력의 규칙을 찾아 냈다. 컴퓨터 속에 가상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구현해서 협력이 유지되고 번성할 수 있는 조건들을 추적한 결과다. 수학, 경제학, 네트워크 과학, 진화생물학을 넘나드는 이 혁신적인 연구를 위해 그는 20년 넘게 각 분야의 위대한 학자들과 협력해 왔고, 그 결실이 이 책으로 집약됐다.
노왁은 진화의 제 3 법칙으로서 협력의 메카니즘을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각 메커니즘의 작동 원리를 밝혔다. 직접상호성, 간접상호성, 공간 선택, 집단 선택, 혈연 선택이 그것이다. 직접상호성은 '네 등을 긁어줄 테니 내 등을 긁어달라'는 주고 받기식 협력이다. 간접상호성 협력의 뿌리는 '내가 당신 등을 긁어주면 다른 누군가가 내 등을 긁어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집단 선택은 협력자들로 구성된 집단은 배신자들로 이뤄진 집단보다 더 성공적으로 살아 남는다는 규칙이다. 혈연 선택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자기 희생도 할 수 있게 하는 힘으로, 풀어 쓰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쯤 되겠다. 공간 선택은 사회적 네트워크나 공간적 요인이 협력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원리다.
이때 각 메커니즘은 저마다 잘 돌아가게 해 주는 윤활유 같은 게 있는데, 예컨대 간접상호성에는 (사회적) 평판이 중요하다.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나 배신을 하면 평판이 나빠져 불리해질 것을 두려워하는 계산이 간접상호성에 따른 협력의 기제다. 노왁이 찾아낸 각 메커니즘의 작동 원리는 진화를 이해하는 열쇠일 뿐 아니라 인간 세상의 바람직한 발달을 위한 처방이기도 하다.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 내달리는 긴 탐구 끝에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의 정점에 오른 것은 다른 어떤 생물종보다 협력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할 줄 알기 때문이며, 오늘날 기후 온난화 등 전 지구적 위기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더욱 강력한 '초협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서문 앞에 배치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 이 책의 메시지를 요약하고 있다.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것은 협력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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