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임대업자 김모(53)씨는 은행 엔화대출로 막대한 손해를 봤다. 원ㆍ엔 환율이 100엔당 940원이었던 2005년 5월 월 30만원대였던 7,000만엔 대출의 이자가 작년 9월 환율이 1,520원까지 치솟으면서 77만원까지 급증했다. 은행에 항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애초 약관이 그랬다”는 것. 엔화대출 약관상 금리는 ‘외화채권 가산금리+리보금리(런던 은행 간 금리)+개별 가산금리’로 규정돼 있다. 김씨는 “은행이 엔화대출을 해줄 때 싼 이자만 내세웠지 이런 위험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며 “나중에 확인해보니 환율 급상승 때엔 원화대출로 전환도 가능했는데 정말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금융사의 약관은 금융문맹을 부추기는 장본인이다. 겉으로는 “상품 약관을 꼼꼼히 확인한 뒤 가입하라”고 강조하지만, 일반인에겐 해독조차 어려운 전문용어로 가득한 약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보험사들이 툭하면 ‘가입 전 고지의무 위반’ 등을 핑계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근본적으로 소비자가 불리한 구조지만 금융당국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법률에 근거한 약관 용어를 쉽게 바꾸면 자칫 보상이나 해석방법이 달리질 수 있어 조심스럽다”며 “결국 소비자 교육을 통해 이해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약관 내용이 금융사에 유리하게 돼 있는 것도 문제다. 최근 금감원은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하면서 소비자에게 불리한(보험사에 유리한) 면책사유를 손질했다. 예컨대 동승자 중 한 사람이라도 보험금 지급대상이 아니면 모두에게 보험금을 주지 않도록 하는 식의 조항이 여전히 금융 약관 곳곳에 숨어 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현행 은행 여신거래 기본약관에도 ▦1년을 365일로 규정해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에는 하루치 이자를 부당하게 챙기고 ▦연체고객의 재산을 압류할 때, 압류통지를 고객이 받은 시점이 아니라 발송을 기준으로 효력을 규정하는 등 은행에 유리한 불공평 조항이 수두룩하다”고 지적했다.
함상열 금융소비자원 본부장은 “금융사가 일방적으로 약관을 만들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금융당국에서 점검하는 형태여서 곳곳에 불공정 조항이 산재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소비자 중심으로 약관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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