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불법오락실을 운영하다 단속에 걸려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일정한 직업 없이 생활해 온 이모(30)씨. 유흥비가 필요했던 이씨는 어릴 적 부모가 이따금 현관문 열쇠를 우유주머니에 놓고 다녔던 기억이 떠올라 자신의 거주지인 광진구 일대 주택단지를 돌면서 출입구에 달린 우유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부터 1년 동안 우유주머니나 집 앞 화분 밑에 숨겨둔 열쇠를 이용해 문을 따고 들어간 회수는 19차례. 하루 종일 범행을 물색해도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두 차례밖에 성공하지 못한 이씨에겐 '디지털 도어록'이 눈엣가시였다. 디지털 도어록이 널리 보급되면서 열쇠를 따로 보관하는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속칭 '빠루'로 불리는 노루발못뽑이로 디지털 도어록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본 이씨는 공구점에서 8,000원을 주고 산 빠루로 광진구 일대에서 지난 6월부터 4개월간 18차례 3,500만원어치의 금품을 훔쳤다. 빠루에 디지털 도어록을 뜯어내자 쉽게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경북 구미, 경주, 인천, 대전 등 전국을 돌며 고급 아파트만을 골라 75차례에 걸쳐 2억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일당도 디지털 도어록만 골라 빠루로 범행을 저질렀다.
S보안업체 관계자는 "올 들어 전기충격기로 디지털도어록에 내장된 CPU 등 주요 장치 망가뜨리는 절도 수법 때문에 잠금장치 내부를 전열 처리한 디지털 도어를 만들었다"면서도 "빠루로 디지털 도어록을 뜯는 방식은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마땅한 개선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경찰 관계자는 "디지털도어록과 함께 이중으로 자물쇠를 잠그는 방법 외에는 현재로서는 뚜렷한 예방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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