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바둑계에 '사건'이 벌어졌다. '바둑판의 승부사' 이세돌 9단과 올 들어 세계 타이틀만 2개를 거머쥔 백홍석 9단, 세계바둑최강전 우승자 이호범 3단 등 쟁쟁한 기객들로 꾸려진 한국바둑리그 '신안천일염'이 '한게임'에 패했기 때문이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실력의 기사들로 '최고령의 감독'이 꾸린 팀에 무릎을 꿇은 터라 충격은 더욱 컸다. '최고령 감독'은 한 때 세계 프로 포커계를 주름잡던 차민수(61)씨다. 2003년 TV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이다.
29일 서울 문래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선수들이 열심히 한 결과지 감독은 한 일이 없어 내가 축하 받을 일은 아니다"라며 손사래 쳤다.
하지만 우승의 일등공신은 차씨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는 "선수들을 믿고 맡긴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 실제 그는 선수들과 '아버지와 아들', '형님과 아우'의 관계 유지를 위해 애를 썼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가정사 등 주변 환경에 대해 감독이 꿰고 있어야 선수를 적시 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법입니다. 감독은 선수들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감독이 힘든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죠."
이런 인식과 선수 관리전략은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총 5장 중 4장까지 2대 2의 성적을 낸 뒤 마지막 판에 승부를 건다는 판단 아래 막 판에 출전시킨 14세 소년 이동훈 초단이 신안천일염의 한상훈 6단을 누른 것이다. "고도의 정신집중이 절대적인데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실력 발휘가 되겠습니까? 또 그렇잖아도 부담 백배인 자리인데, 생각 깊은 선수는 실력을 더욱 발휘하기 힘들죠. 어깨 힘 빼고 집중해서 돌을 놓기만 해도 이긴다고 봤어요." 그는 이 초단에게 "'편안하게 네 바둑을 둬라'고 한 게 전부"라며 웃었다.
차씨는 1986년부터 10년간 미국에서 '지미 차'로 불리며 포커계 전성기를 누렸고, 한때 상금과 승률 랭킹 세계 1위를 기록하기도했다. 정상에 오른 뒤 내려와 또 다른 일을 계속 찾았듯 그는 "적당한 때에 감독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했다. 연간 수 백억원을 벌어들이며 미국에서 잘 나가던 그가 2006년 그 100분의 1도 안 되는 월급을 주겠다는 한국관광공사 그랜드코리아레저(카지노) 상임이사로 앉은 것도 따지고보면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게 해서 한 일이 겜블러 외에도 사진사, 태권도 사범, 페인트공, 목수, 화가, 경호원 등 손으로 꼽을 수가 없어요."
그는 국내 서비스산업을 주목하고 있지만, 지금 같은 정부 당국의 인식 수준과 규모로는 선진국 진입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세계 카지노 100개중 47개가 미국에 있는데 '도박 공화국'으로 불리진 않잖아요? 카지노는 돈을 따는 곳이 아니라 돈을 써서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라는 사실을 가르치면 일자리, 정부재정 문제가 모두 해결될겁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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