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이어 1960~70년대에도 선감학원에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는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경기도와 안산시는 진상조사는커녕 일제 때 희생자 위령비 설치를 놓고도 갈등을 빚고 있다.
29일 경기도와 안산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말 선감학원 희생자 위령비와 추모공원 설치를 도에 요청했다. 시가 원한 곳은 선감학원의 전신인 경기창작센터 내 부지다. 해방 후에도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기 전이라 이 위령비는 일제 때 숨진 소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시는 위치와 규모가 확정되면 내년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위령비 등을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도는 '위령비는 소년들이 묻힌 경기창작센터 인근 야산에 세우고, 창작센터에는 전시실을 설치하자'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선감도는 전체 면적 중 약 78%가 도유지이지만 공교롭게도 도가 위령비 위치로 추천한 야산은 얼마 안 되는 시유지 중 하나다. 결과적으로 시는 도유지를, 도는 시유지를 서로 위령비 자리로 떠넘기는 상황이 됐다. 도 관계자는 "창작공간 안 위령비는 부적절해 전시실을 제안한 것"이라며 "꼭 위령비를 세우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1960~70년대 선감학원 출신들이 등장하자 이번에는 시가 한발 물러서고 있다. 도가 선감학원을 운영한 시절에도 비극이 발생했다면 일제 때 희생자 외에도 위령비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 관계자는 "도 시설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우리가 먼저 나서서 주도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제 때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는 시가 1998년부터 건립을 추진해 예산확보와 설계까지 마쳤지만, 1999년 명확한 이유 없이 유야무야로 끝났다. 2년 전에야 다시 건립 여론이 형성되며 올해 재추진됐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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