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의
화가
얼마 전 학교 후배의 결혼식이 있었다. 가족 친지와 친한 친구 몇 사람만 모이는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후배는 결혼식의 축사를 내게 부탁했는데, 결혼식 당일에 예상치 못한 엄청난 교통 체증이 생겨 식장에 늦게 도착하였고 그 바람에 축사를 하지 못했다. 신랑 쪽으로 축사가 하나 더 준비되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 후배에게는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이 남는다.
돌이켜 보면 그 축사를 부탁받았을 때,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모른다. 간곡한 부탁에 거절은 못하겠고, 내가 축사를 할 자격은 있는지,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말 아무생각이 나지 않았다. 후배는 결혼생활의 지혜를 담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의 결혼생활에 특별한 지혜가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고, 그런 걸 의식하면서 생활해보지 않아서 더욱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결혼생활을 위해 특별히 머리 굴리고 살지도 않았고, 또 뭐 어떻게 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룰을 만들고 룰을 지키며 살아왔던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더욱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좋은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더욱이 내가 결혼할 당사자인 후배도 아니고 내 남편이 후배의 신랑도 아니고, 입장이 다르고 놓여있는 맥락이 달랐다. 결국 결혼 생활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겐 이처럼 결혼생활의 지혜라는 것이 어렵기만 한데, 방송이나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들여다보면 종종 결혼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때 마다 무엇은 절대 안 한다, 무엇을 절대 지킨다, 이렇게 단호히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놀랍다. ‘절대로 무엇을 한다’와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한다.’에는 큰 차이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난 후자인 셈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고 내가 내 속을 다 알지도 못하는 데, 결혼생활의 지혜를 얘기하기는 더욱 어렵다. 나의 지혜가 후배를 위한 모범답안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바람은 있었다. 후배와 후배의 신랑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고 둘 다 사연이 많은 재혼이었기 때문에, 나의 바람은 더욱 확실했다. 그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라니, 그것이 무슨 바람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회적으로 너무나 평범하지 않은 비범한 사람들이기에, 결혼생활만큼은 더욱 ‘대단히‘가 아니라 그냥 원만하면 좋겠고, 뛰어나고 색다르기보다 안정적이었음 좋겠다는 것이었다. 실은 지금의 시대는 평범하기도 쉽지 않은 시대이다. 상식 밖의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자행되는 현실이다. 평범하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정도(正道)인데 말이다.
별을 보려면 어둠이 필요하다했다. 결혼생활도 인생의 여러 굴곡 속에 놓이게 될 텐데. 그럴 때 그 굴곡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넘길 수 있는 곡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티격태격하더라도, 좀 예쁘지 않더라도, 직선이기 보다는 굴곡에 부러지지 않는 곡선이 되어, 그냥 시간에 기대어 물 흐르듯이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비가 오면 우산이 되어주고 볕이 나면 옷을 말리고 추우면 옷깃을 세워주고 땀 흘리면 수건을 건네주고, 이 모든 것이 바로 평범한 일상일 것이다. 너무 어렵거나 복잡하고 거대한 의미론을 내세우기보다, 평범한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이 결혼생활이 아닐까.
결혼을 한다는 말은 살림을 차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살림을 합치는 일, 사전에 보면 살림은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이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죽임의 반대어로서 살림을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는 두 사람이 각자가 자기를 살림으로서 각자 전문직 직함을 갖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는 각자가 자기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살리는 것을 시작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곧 평범한 살림인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두 사람이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상대방을 살리는, 그야말로 행복한 살림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