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에 대한 사상 초유의 감찰 착수로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 중수부장이 정면 충돌하며 내분 양상을 보인 검찰은, 29일 오전부터 직위 고하를 막론한 일선 검사들이 한 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다.
이날 오전 채동욱 대검 차장검사는 일선에 "측근 참모들이 총장에게 용퇴를 건의할 테니 일선 검사들은 집단 행동을 자제해 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이 내용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통해 공개됐다. 한 총장 직속 라인인 대검 대변인실을 배제하기 위한 채 차장의 결정이었다. 채 차장의 자제 요청은 전날 밤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검찰청의 부장급 이상 검사들이 긴급회의를 한 결과 한 총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보고를 받은 뒤에 나온 것이었다. 일부 지방청에서는 연판장이 돌기도 했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오전 9시, 최 중수부장을 제외한 채 차장 등 대검 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대검 청사 8층 총장 집무실을 찾아 한 총장에게 용퇴를 건의했다. 집무실 맞은편 강당에는 기획관급 간부, 과장급 이하 중간간부들과 연구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순차적으로 총장에게 사퇴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한 총장이 버틸 경우에는 서울중앙지검 소속 부장검사 등이 오후 4시에 찾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 총장은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오히려 "너희들은 책임이 없냐. 내가 나가면 너희들도 나가라. 왜 너희들이 나서냐"며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화 도중 여러 차례 고성이 오갈 정도로 분위기는 싸늘했다. 그러다 거듭된 사퇴 요구에 한 총장은 "개혁안을 발표할 때 그만두겠다"는 뜻을 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검 간부는 "화를 내는 도중에 한 말이라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한 총장은 격앙된 상태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중앙지검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수석평검사 회의를 열고 총장 방문 계획을 철회했다. 오후 1시30분, 한 총장은 "30일 오후 2시 검찰개혁안을 예정대로 발표하겠다"고 밝혔고, 20분 뒤에는 "개혁안을 발표한 후 신임을 묻기 위해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한 총장은 입장 발표 직전에 '신임을 묻는다'는 전제를 달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
일단 모양새는 한 총장이 백기를 든 셈이었다. 한 총장은 오후4시쯤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을 부르고, 이어 채동욱 차장 등 대검 고위 간부들을 불러 최 중수부장 감찰 착수 경위와 자신의 사퇴 의사를 설명했다. 하지만 채 차장과 대검 공안부장은 한 총장의 설명이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하는 등, 한 총장의 지휘권이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은 계속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한 총장의 사퇴 의사에 대해 '용퇴로 보기 어렵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자리에서 물러날 사람이 굳이 검찰개혁안 발표를 고집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청와대의 사표 반려를 염두에 둔 사실상 '쇼' 아니냐는 비판이다. "한 총장이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 "자신의 손으로 검찰개혁을 하는 모양새를 만들려고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사퇴는 하겠지만 청와대에서 사표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자세는, 우리가 요구하는 책임 지는 수장으로서의 용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유력 대선 후보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한 총장이 정치권의 힘을 배경으로 총장직에서 버틸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번 사태에 대해 일부 지검장들의 사직 의사가 전해졌을 때도 한 총장은 오히려 이들의 사표를 수리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었다.
법조계는 이번 사태에 대해 질타 일색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민 입장에서 이번 사태는 결국은 검찰조직의 내분으로밖에 안 보일 것"이라며 "어떤 선택이 정말 국민을 위한 것인지 고심해서 달라진 검찰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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