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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셀프 시대의 약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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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셀프 시대의 약과 건강

입력
2012.11.2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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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부터 감기약, 진통제, 해열제, 소화제, 상처에 바르는 연고 등 일부 일반의약품을 ‘안전상비의약품’으로 지정하여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거의 전적으로 전문가에게 의존했던 의약품 선택의 기회를 소비자들에게 보다 폭넓게 허용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휴일이나 심야시간에 약을 구입하지 못했던 소비자들의 불편을 상당부분 해소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작 필요할 때 살 수 없을 것을 우려하여 미리 사두었던 약들이 유통기한을 넘기거나, 아무렇게나 버려져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약품을 일반 유통업체에서 판매하는 데 대한 우려와 논란은 여전하다. 이번에 약국이 아닌 장소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된 안전상비의약품은 정부가 의사 처방 없이 구입해도 비교적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들이지만, 별다른 경각심 없이 사용한 약이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사례도 드물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100% 안전한 약이란 없다. 약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질병의 상태나 나이 등 환자의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발생률이 낮더라도 한 번 발생하면 매우 치명적인 부작용은 환자와 가족들의 삶에 심대한 고통을 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부작용을 겪을 수 있는 환자의 유전적 특징이나 한국인에게 발생하는 확률 등이 아직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아 부작용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차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의약품을 최대한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최종 소비단계에서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예상 가능한 위험을 미리 파악하는 소비자들의 습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약물 부작용이 의심될 때 해당 내용을 적극적으로 신고하면 약물 안전성 정보 생성을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부터 자발적부작용보고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의약품을 시판하기 전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임상시험만으로는 약이 지닌 모든 부작용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시판한 후 나타나는 부작용 정보를 수집분석하여 안전관리를 강화하자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를 제대로 알고 활용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2000년대 들어 제약회사와 약국의 부작용보고를 의무화하고, 2006년부터 전국 주요 대학병원을 지역약물감시센터로 지정한 결과, 국내 부작용보고건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지만 소비자들의 인식과 관심이 저조하여 획기적인 질적 향상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의약품 안전성정보를 체계적 효율적으로 수집, 분석, 평가하는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이 출범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의약품안전원은 4월 개원 이후 의약품유해사례보고시스템과 의약품부작용신고센터를 설치해 의약 전문가와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의약품 부작용을 신고할 수 있는 창구를 확대하였다. 이를 통하여 안전상비의약품을 비롯한 모든 의약품의 부작용정보가 체계적으로 수집되면 한국인에 맞는 안전성정보를 자체 생산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부작용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셀프주유’, ‘셀프세차’, ‘셀프서빙’…. 원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자기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소비하는 ‘셀프’ 문화가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됐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의료정보의 접근성이 확대되면서 전문가 도움 없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약은 꼭 필요할 때 적절히 사용하면 의도한 효과를 나타내지만, 오ㆍ남용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 소비자들이 약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한 안전상비의약품 약국외 판매 허용과 함께 안전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운 정책의 시행으로 약의 선택권을 갖게 된 소비자들이 의약품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부작용을 경험할 때 적극 신고하여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스스로 챙기는 셀프 시대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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