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명상법 우열은 없다한국불교, 화두 곱씹는 간화선남방불교, 호흡수행 위빠사나서로 인정·융합해 발전시키기를서구에 친숙한 위빠사나숨쉬는 데서 출발, 쉽게 접근 가능한국불교 명상센터 세계보급 미흡간화선 전파 요건 아직은 한계성철스님은 뛰어난 롤모델유명 선사면서 교리 정확히 이해원시불교 12연기 설명 감명받아내 논문에 자주 인용하기도
불교 수행이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선방에 앉아 화두를 잡고 그 의미를 곱씹어 깨달음을 얻는 간화선(看話禪)이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 같은 수행 전통이 1990년 이후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남방불교권에서 유행하는 '위빠사나'가 수입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두가 아니라 자신의 호흡에서 시작해 몸, 느낌, 마음을 관찰하는 이 명상법은 불교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서구인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어, 적어도 보급 수준으로만 따지면 간화선보다 훨씬 세계적이다.
그런데 위빠사나는 간화선보다 더 나은 명상법인가. "우열 같은 것은 없다. 수행하는 개인에게 어느 방법이 더 적당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남방불교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피터 스킬링(63) 프랑스 극동학원 연구원은 28일 "여러 명상법이 가장 오래되고 순수하고 고유하다는 주장을 제각각 하지만 학문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29, 30일 동국대에서 열리는 '불교의 명상:고대 인도에서 현대 아시아까지' 국제학술포럼 참석을 위해 방한한 피터 박사는 이날 인터뷰에서 "세계화 이후 특정지역ㆍ문화에 국한됐던 명상법을 서로 알게 됐다"며 여러 유형의 명상법을 "두루 경험해 좋은 점을 인정하고 융합한다면 명상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0대 초반 캐나다 토론토에서 티베트불교 책을 읽고 흥미를 느껴 인도, 태국 등에서 살며 50년 가까이 불교 공부를 이어왔다. 1970년대 초 태국에서 승려 수행를 했고 그 동안 미국 하버드대, 버클리대, 영국 옥스퍼드대, 호주 시드니대 등에서 강의했다. 피터 박사를 초청한 황순일 동국대 교수는 "세계 불교학계에서 가장 논문을 많이 쓰는 학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이번 포럼에서 '불교의 명상:누가 독점하는가'라는 글을 발표한다.
"불교에서 열반이라는 목표는 하나다. 하지만 거기로 가는 길은 아주 많다. 부처는 배우는 상대의 능력, 경향에 맞게 가르쳤기 때문에 명상도 다양하게 설명했다. 불교의 명상은 어느 특정한 사람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간화선, 위빠사나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명상법인가.
"남방의 위빠사나 방법은 오래 잡아도 200년밖에 안 된 것이다. 부처님이 하던 명상법이라고 합리화하기 위해 명상법을 초기 경전에 나오는 문구와 일치시킨 것일 뿐이다. 어느 것이 더 오래되고 더 좋다는 식으로 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수행자가 자기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서 그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한국은 간화선밖에 모르고, 중국은 중국 선불교밖에 남방은 남방불교밖에 몰랐지만 세계화 이후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졌다. 두루 해보면서 명상을 발전시킬 수 있고, 서로 인정, 융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위빠사나 명상법은 서구에서도 친숙하다.
"간화선은 중국 송대나 한국 고려시대 이후 제한적인 지역과 문화에서 해온 것이고, 티베트불교의 만트라 등을 이용한 영상 명상도 그 지역에 제한된 것이지만 위빠사나는 숨쉬는 데서 출발하니까 서구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흔히 호흡수행법인 '수식관(數息觀)'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5세기 남방불교의 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대승불교 법상종(유식학파)의 백과사전인 의 설명이 더 훌륭하다. '수식관'은 남방이 독점한 것이 아니다."
-서구에서는 왜 간화선을 어려워하나.
"간화선은 오랜 시간 수행을 하다가 어느 순간 반짝하고 깨닫는 것인데, 일반 사람들은 앉아 있어도 변화가 없으니까 하다가 그만 두고 만다. 특히 한국불교는 간화선을 세계화할 조건이 충족돼 있지 않다. 명상센터가 세계에 퍼져 있지 않고, 거기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지도할 사람이 전혀 없다. 일본은 50, 60년 전에 미국, 영국, 독일에 명상센터를 세웠고 지금 2, 3세대 현지인 지도자들이 가르쳐 불교 명상을 널리 보급했다. 산속에서 죽비 들고 때리고 있어서는 세계화 안 된다."
-선방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해도 되나.
"승단에서 중요한 것은 화합이다. 화합이 깨지면 교단이 허물어진다. 선방에서 다른 방식의 수행을 할 경우 스승과 의논해서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동아시아불교에서 위빠사나 명상을 받아들이려면 를 공부한다면 큰 마찰이 없지 않을까."
-성철 스님의 을 읽었나.
"유명한 선사이면서 불교 교리를 정확히 알고 있는 분이다. 교리에 대한 이해와 수행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나에게 뛰어난 롤 모델이다. 특히 원시불교 12연기에 대한 설명은 정확하고 분명해 깊이 감명 받았고 그 내용을 논문에 자주 인용한다. 스님은 '중도'라는 것으로 불교 전체를 설명하는데, 이같은 다양한 해석을 인정해야 불교에서 훌륭한 가르침도, 명상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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