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투병중이신 소설가 최인호 선생님을 모시고 성남시 인근으로 보신탕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Y출판사의 주간, 그리고 일간지 기자 등이 동석한 자리였다.
누구보다도 정열적이고 화려한 삶, 충분한 부와 명예를 누리며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신 선생님은 가톨릭에 귀의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궁구하고 있던 터에 암 선고를 받으셨다. 세상이 자기 것인 줄 알았던 작가가 삶의 유한함과 인간의 왜소함을 깨닫고 신을 영접하기로 했는데, 상을 주는 대신 병을 선물로 주셨을 때 신에 대한 원망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수십 차례의 방사선과 항암 치료, 세간의 지나친 관심 등 어지간히 투병생활에 이골이 난 그 즈음의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달관한 듯, 인자하고 너그러운 표정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기지와 해학을 넘어 어떤 초월에 가 닿은 듯한 말씀이셨다. "다시 삶을 산다면 이름을 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볼 수 있는 모든 표식을 버리고 이런 시골에 파묻혀 시골 무지렁이 여인과 살 섞으며 빈대떡이나 붙여 팔며 살고 싶다. 탁주는 직접 손님들이 먹고 싶을 만큼 떠먹게 다라이 속에 쟁여놓고 바보처럼 한없이 단순하게 살고 싶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어떤 위악적인 상징처럼, 상 위에는 이름 없는 개 한 마리가 삶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사람 몇을 위해 온몸을 찢어 고기로 끓고 있었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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