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고객들이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본보 28일자 12면)로 은행권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자칫 나머지 소송에서도 소비자가 이길 경우 은행권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만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근저당권 설정비 부담을 놓고 현재 17개 은행이 10만명의 대출자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다음달 11일 모든 은행권 여신담당 부장들이 모여 근저당 설정비 소송 관련 대책을 논의하며 공동 대응할 방침이다. 은행 관계자는 “기업이 상품 생산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듯 은행이 담보대출 비용을 대출자에게 부담한 것이라 문제될 소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근저당권 설정비 소송의 핵심 쟁점은 설정비를 대출자에게 부담하도록 한 게 맞느냐에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 근저당권 설정비를 은행이 부담하도록 표준약관을 개정했다. 그 동안 은행은 설정 비용을 고객이 부담하면 대가로 금리를 깎아주었는데, 이런 방식은 고객이 할인된 이자 총액과 근저당 설정비용을 제대로 비교할 수 없다 게 개정 이유였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은 지난해 8월 공정위 약관 개정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27일 경기 부천시의 한 신용협동조합에 대한 인천지법 부천지원의 판결도 금융기관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기관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했으며 이 같은 불공정한 약관도 무효로 봐야 한다는 게 주된 취지였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이번 판결은 쟁점 사안에 대한 사법부의 첫 판단으로, 나머지 소송도 비슷한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사들은 설정비를 고객이 부담하는 관행은 불법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은행은 신협과 달리 설정비 부담 여부에 따른 금리차를 고객에게 설명했고, 고객이 설정비를 부담할 때 금리 인하, 중도상환 수수료 면제 등의 혜택을 부여해 약관 자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다음달 6일 국민은행을 상대로 270여명의 고객이 근저당 설정비 등 4억3,700여만원을 돌려달라고 청구한 1심 판결이 이번 소송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전국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신협은 설정비를 고객에 전가시킬 때 금리상 차이가 없었고 설정비 부담 여부에 따른 대출금리 차이도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들의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며 “설명 약관이 무효라고 해도 금리 할인, 중도상환 수수료 면제 등의 혜택을 제공해 부당한 이득을 취했거나 고객이 손해를 입었다고 할 수 없어 설정비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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