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인 안젤라 루기에로(32ㆍ미국)는 '슈퍼 우먼'으로 유명하다. 고교 시절부터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그는 1998년 나가노 대회를 시작으로 2010년 밴쿠버 대회까지 4회 연속 동계 올림픽 무대에 나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올림픽에서의 성과보다 루기에로를 유명하게 한 것은 2005년 1월 남자 선수들과 함께 프로 무대에서 정식 경기를 치른 일이다. 미국 아이스하키 독립리그인 CHL 툴사 오일러스 소속으로 리오그란데와의 정규리그 경기에 출전한 루기에로는 6분33초 동안 빙판에 나서 어시스트 1개를 기록하며 7-2 승리에 일조했다. 북미 프로 아이스하키리그(NHL) 사상 골리를 제외하고 정식 경기에 출전한 유일한 사례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에서 5년째 활약하고 있는 안근영(21ㆍ광운대)은 '한국의 루기에로'에 도전한다.
안근영은 광운대가 내년에 선발한 아이스하키 특기생 1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발됐다. 내년 4월 열리는 전국대학선수권에서 공식 데뷔전을 노리고 있다. 175㎝, 87㎏으로 웬만한 남자 선수 못지않은 당당한 체구를 지녔던 루기에로와 달리 안근영은 160㎝ 남짓한 왜소한 체격이다. 단체 스포츠 가운데 가장 격렬하다는 아이스하키와는 어울리지 않는 곱상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단 한 번도 스틱을 놓을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2010년 혜화여고 졸업 후에도 빙판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광운대로부터 아이스하키에 대한 열정을 인정 받았다.
2008년 해체됐던 아이스하키 팀을 지난 해 부활시킨 광운대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여자 아이스하키 육성에 힘을 싣는다는 취지로 아이스하키 특기생에 안근영을 포함시켰다.
안근영은 강북중 1년 재학 시절 동생 안성근(19ㆍ광운대)이 활약하던 유소년 클럽에서 처음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안근영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대표팀에 선발됐다. 그러나 '태극 마크'의 대우를 제대로 받아본 적은 한번도 없다. 고교 시절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학업과 대표팀 훈련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한번 중독되면 헤어날 수 없다는 아이스하키의 마력을 떨치지 못했다. '꿈의 무대'라는 올림픽 무대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그를 지탱해줬다.
안근영은 한국 아이스하키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2018년 평창 올림픽 유치가 결정됐지만 남녀 아이스하키의 자동 출전은 보장돼지 않았다. 출전한다고 해도 현재의 실력으로는 망신을 당할 뿐이다. 그러나 그는 "투자와 육성이 이뤄진다면 여자 아이스하키도 다른 종목 못지않은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당차게 말한다.
안근영은 2007년 창춘 동계 아시안게임 때 일본에 0-18로 졌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공격이 이뤄지지 않아 상대방 쪽 빙판은 정빙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60분 내내 일방적인 경기가 진행됐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 중국과의 격차가 4~5골 정도로 좁혀졌다.
여자 대표팀이 순수 동호인으로 구성됐음을 고려하면 기적 같은 일이다.
안근영의 목표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 동생과 나란히 태극 마크를 달고 나서는 것이다. 187㎝의 당당한 체격을 지닌 디펜스인 안성근은 경복고 시절 18세 이하 대표팀에 뽑혔고 지난 4월 한양대와의 전국대학선수권에서는 해트트릭으로 8-7 승리를 이끌었던 유망주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