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부터 스터디 모임을 꾸려 약학전문대학원 면접시험을 준비 중인 정수현(24)씨는 모임 장소로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지하철 2호선 신촌역의 '민원실'을 택했다. 25㎡남짓한 이 곳은 평소 역장이 상주하는 집무실이지만 평일 업무 시간 이후인 오후 6시30분부터는 역이 대학생과 일반인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몰리는 주말에도 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개방된다. 24일 저녁 팀원 5명과 함께 스터디 모임을 한 정씨는 "신촌역 인근 사설 스터디룸은 한 번(3시간 기준) 사용하는 데 1인당 6,000원을 내야 한다"며 "민원실은 부담이 없어 주머니가 가벼운 수험생이나 대학생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했다. 더욱이 민원실은 한쪽 구석에 있어 조용하기까지 해 집중도 잘 된다.
신촌역이 민원실을 '열린 동아리방'이라는 이름의 스터디룸으로 개방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3월. 민원실은 야간에 사용을 하지 않으니 주변의 대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자는 뜻에서 최동기(57) 전 신촌역장(현 대림역장)이 낸 아이디어였다. 최 전 역장은 "대학생들의 동아리 방이나 공부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내 집무실을 쓰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역장 책상을 한쪽 구석으로 옮기고 8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중앙에 배치했다. 지난해 170회 883명이던 이용객도 올해는 1,000명에 이를 것으로 역은 보고 있다. 이승일(54) 신촌역장은 "대학생뿐 아니라 춤 동호회, 외국인 유학생, 작가지망생 등 각계각층이 이용한다"며 "다른 역에도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유공간을 개방, 이웃과 공유하는 일이 비단 여기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 관악구를 방문하는 시민들은 잠시 주차 걱정을 잊어도 된다. 월 3만원을 내고 집 앞 골목길에 주차하는 '거주자우선주차제'를 신청한 주민들이 출근 후 비어 있는 주차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는 '해피투게더' 제도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관악구를 담당하는 한 택배업자는 "해피투게더에 참여한 주민이 세운 '잠시 주차 가능'이라는 안내판을 보면 불법주차로 딱지 뗄 걱정 없어 반갑고, 마음도 훈훈해진다"고 말했다. 물론 이용자들이 간혹 연락처를 남기지 않아 마음이 상하고 차량이 견인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주민들의 호응은 높다. 관악구시설관리공단이 지난해 4월 지역 상가와 가정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할 당시 100곳이 신청했지만 올해는 210곳이 신규 신청할 정도다. 공영주차장 한 면당 땅값 등 7,300만원이 필요한 걸 감안하면 연간 219억원 가량이 절약된다는 게 공단의 추산이다. 송파구 등 다른 자치구도 '해피투게더'를 도입할 정도로 주차공간 공유문화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 아이디어를 낸 최정석(62) 관악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은 "구에 비탈길, 언덕, 정비 안 된 골목이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주차공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라며 "불법 주차 차량을 무조건 견인하거나 딱지 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