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송들이 연말 가요 축제에 한국 가수들을 배제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의 사과 요구로 촉발된 일본인의 반한 감정이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제63회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가수 명단을 26일 발표했다. 스마프, 아라시, AKB48 등 일본의 인기가수 50팀이 선정됐으나 한국 가수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매년 12월 31일 홍팀과 백팀으로 나눠 노래 경연을 하는 홍백가합전은 일본의 대표 음악 프로로 1963년 역대 일본 최고 시청률(81.4%)을 기록했다. 지난해 시청률은 40.1%로 전성기에 비해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1위였다. 한국 가수로는 계은숙, 조용필, 김연자 등이 출연한 적이 있으며 한류 붐이 일기 시작한 2002년부터는 보아, 류시헌, 이정현 등 한국 가수가 빠짐없이 참가했다. 지난해에는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등 3팀이 출연해 한류붐을 실감케 했다.
한국 가수가 올해 갑자기 빠진 것을 두고 NHK의 관계자는 "K팝 가수들의 올해 활약도가 지난해에 미치지 못해 제외했을 뿐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소녀시대가 10월 일본에서 새 앨범을 발표하며 인기 상승세에 있고 카라는 내달 5만여명을 수용하는 도쿄돔에서 공연하는 등 한국 가수의 활약이 여전히 활발해 NHK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 가수 배제는 한일 관계가 나빠진 시점에 이미 예견됐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마쓰모토 마사유키 NHK 회장은 9월 기자회견에서 일본 국민의 반발을 고려, K팝 가수들의 홍백가합전 출연이 어려울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언론은 반한류 기류를 의식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닛칸스포츠는 "독도 등 영토 문제가 불거지는 국제정세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인터넷매체 서치나는 "일부 극우 일본인이 주도하는 반한류 분위기가 일본 사회 전반에 스며들고 있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홍백가합전과 함께 일본 3대 가요제로 불리는 니혼테레비 계열의 '베스트 히트가요제 2012'와 후지TV 계열의 '2012 FNS 가요제'에서도 한국 가수들이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전문가는 "가요제를 주최하는 방송사들이 내달 16일 총선을 앞두고 독도 문제 등에 민감한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는 경향도 있다"며 "선거가 지나면 한국 가수의 출연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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