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역하면 'Paul의 빚을 갚기 위해 Peter에게 강도짓을 하다'라는 뜻이다. A에 써야 할 급한 돈을 B한테 꾸거나 마련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보다 더 많이 쓰이는 것은 어디에나 '빚 돌려 막기'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빚 갚기 위해 융자받아 막았다(I had to take out another loan to pay my debts, robbing Peter to pay Paul)'는 말이 있다. 영국의 극작가 George Bernard Shaw도 '돌려 막기 하는 정부는 나중은 생각지 않고 자기네 잇속만 챙긴다(A government that robs Peter to pay Paul can always depend on the support of Paul)'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우 공적 자금을 돌려쓰는 것은 관료이고 공무원들이다. 한국의 정부에서도 국민 연금을 명분 없는 곳에 빌려 쓰거나 돌려 막는 데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지금 내는 연금은 지금의 은퇴자에게 지불되기 때문에 국민연금이야말로 나중까지 쌓아 놓아야 할 돈을 미리 당겨 쓰는 '돌려막기'의 한 사례가 됐다.
이 표현은 14세기부터 전해온 것인데 특이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기독교 신자가 많았다. Peter와 Paul은 둘 다 예수의 12제자였기 때문에, A에서 꿔다가 B에게 갚는다는 말은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Decouvrir saint Pierre pour couvrir saint Paul)와 독일(Dem Peter nehmen und dem Paul geben), 스페인(Desnudar a uno santo para vestir a otro) 등에서도 잘 쓰였다. 공교롭게도 두 성인 Peter와 Paul을 기리는 만성절 혹은 성도추모일(Saint's Day, 6월 29일)도 같다. 16, 17세기의 종교 개혁이 있기 전에는 가톨릭 교회 세금을 London에 있는 St. Paul's Cathedral과 로마에 있는 St. Peter's Basilica에 내야 했다. 그런데 두 곳에 낼 돈이 여의치 못할 때에는 급한 대로 한 쪽 성당의 세금을 다른 성당에 우선 냈다. 한 쪽의 급전을 다른 쪽에서 구해 막는 식이었다.
단순히 빚뿐만이 아니다. 한 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문제를 안고 가는 것도 이와 같다. 서민들은 부자 돈을 세금으로 더 징수해 자신들에게 쓰기를 바라는데 이것 또한 이 표현으로 말한다. 심한 경우 A에서 뺏어서 B에게 준다(steal from Peter to pay Paul)는 말도 생겼다. 어쨌든 이 말은 국경과 문화를 넘어 전 세계 어디에서나 현실적인 표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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