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여학생이 핀 조명 아래 꿇어앉아 독백한다. "인터넷에서 혼자 아이 낳는 법 보고,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고. 10대의 문제를 방치 혹은 조장해온 기성 세대의 책임을 이 연극은 추궁하고 있다.
국립극단의 '빨간 버스'는 10대 미혼모의 이야기를 극작ㆍ연출가 박근형식으로 풀어낸 무대다. 2000년 '청춘예찬'이래 바닥의 이야기를 특유의 사실적 기법으로 그려온 박씨의 관심이 이 시대 청소년으로 전환한 결과다.
교사들의 존재는 학생들과 완전히 유리돼 있다. 수퍼에서 유아용품을 훔치다 붙잡히자 보호자라며 경찰서로 달려온 교사는 사실 그 여학생에게 휴대폰으로 밤에도 사랑을 고백하던 장본인. 원조 교제 여부를 추궁하며 윽박지르던 그는 둘만 남자 태도를 돌변, 또 사랑 타령이다. 어른이라는 존재는 물론, 교권을 운위한다는 자체가 여기서는 어불성설이다.
교무실엔 현실에 안주하는 교사들뿐이다. 자리만을 보전하려는 교사들의 처세술이 횡행한다. 10대의 난무하는 쌍욕과 다를 게 없다고 무대는 기성 세대에게 항의한다. 절망하고 돌아서는 그녀를 같은 반의 여학생 둘은 따라가며 슬픈 노래를 읊조린다. 완벽한 암전의 무대가 그들을 위로하듯 감싼다.
가정은 이미 해체됐다. 대화를 통해 아버지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무대에서 아버지는 바른 말 하지 않는다며 아들을 야전삽으로 죽어라 때리는 존재일 뿐이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온 생모는 학교만은 졸업하라고 딸에 닦달한다. 아이를 시설에 맡기라고 하고, 딸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자취를 감춘다.
삶이란 무대에서 일체와 가식과 허영은 축출해 버리겠다는 듯 현실을 냉혹한 시선으로 펼쳐놓는 박근형씨. 열 살은 어린 인물의 내면을 능청스러울 정도로 노련하게 연기하는 국립극단 배우들이 빚어 올리는 청소년 무대다. '소년이 그랬다', '레슬링 시즌'에 이어 보다 문제의 핵심을 겨냥하고 있다. 걸상 네 개로 교실의 의자와 책상, 탁자 등을 만들어내는 게 무대 장치의 전부. 이 시대, 연극성이란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가난한 무대다. 12월 16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
장병욱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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